[이달의 회원] 민달팽이랑 유연하고 즐겁게! 배도현님

민달팽이유니온
2018-05-28 18:16
조회수 619

4월의 이달의 회원은, 2014년에 함께 주거 실태조사를 하던 인연에서 현재는 민달팽이의 큰 일손이 되어주고 있는 배도현 회원님입니다. 본인의 좌충우돌 집 이야기에서부터 최근 임대주택 반대 움직임에 대한 대응을 함께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들까지, 민달팽이 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도현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D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현재 가톨릭대 3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본전공은 경영인데 복수전공인 사회학과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사회학과 수업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1년 동안 경영학만 들어야 될 정도로요. 지금은 제 인생에서 보다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시점이에요. 나이에 대한 무게감도 느끼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 같고요.



Q 민달팽이를 알게 된 시기는 언제죠?

A 민달팽이 유니온(약칭 민유)가 14년도 여름 주거실태설문조사 했을 때, 그때 처음으로 민유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그 전엔 학보사를 했고 그 이후부터는 민유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죠.

 정리해서 말하자면, 민달팽이 존재를 알게된 건 14년도 여름에 민달팽이가 설문조사를 돌려 연구보고서 같은 걸 만들 때였어요. 그때 설문조사 같이 돌리면서 알게 된 거죠. 이후에 14년도 11월에 기사 쓰면서 황서연님을 만나고 민유 사람들을 만나다가 18년 1월부터 일을 하게 되었어요. 


Q 저희는 도현씨를 시사인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한 엄청난 분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이견의 여지없는 대상'이라는 심사평의..!

A 아니에요(웃음) 저는 사실 감흥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감흥이라는 말은, 받고 주변에서 축하도 많이 받고 영향력이 좀 있어야 하는 건데 받고 그냥 바로 부대로 복귀했어요. (웃음) 복귀하고 오히려 상 받았다고 욕먹었어요. 그래서 상 받은 건 너무 고맙고 좋은데 그냥 그걸로 끝.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람 자체가 굉장히 쉽게 들뜨는 인간인데 그럴 겨를을 안 줘서 고맙긴 해요. 자만한 적도 없고. 그게 끝이에요, 그냥. 



Q 기사 쓰면서 실태조사 했잖아요? 직접 해본 소감이?

A 사실 저는 단순히 대학 학보사의 정체성과 가톨릭대의 문제를 함께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는데 처음엔 흔한 것들 있죠? 장학금, 주거문제, 청년 빈곤 문제 등등 말이에요. 그 많은 것들 중 주거 쪽으로 틀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제 경험 때문이었어요. 제가 주거 쪽으로 문제를 겪어서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거든요. 고시원도 살아보고 기숙사도 살아보고 학교에서도 살아보고. 그래서 이런 걸(주거 관련 기사) 한번 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실 그때는 문제의식이 진짜 허접했죠. ‘주거 문제 심각하지.’라는 생각, 딱 그만큼에서 시작했죠. 그러면서 자료를 막 찾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최저주거기준, 소득 대비 주거비 기준 등등 그런 것들을 알게 된 거죠.

 동시에 ’가톨릭대는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사실 짐작은 안가지만, 가톨릭대도 다른 대학이랑 비슷하거든요. 여기도 대학가고 대부분 원룸이고 고시원들이 많았고. 그래서 맨 처음 했던 게, 원룸이 얼마만큼 있고 고시원이 얼마만큼 있는지 다 전수조사 하는 거였어요.


Q 학교 일대를 전부요?

A 네.


Q 그걸 어떻게 다 조사했나요?

A 발로 뛰었어요. 원룸은 부동산 가기도 했고, 고시원은 제가 진짜 발로 뛰었어요. 그때 학교 앞에서 2년 정도 산 시점이어서 대충 어디에 뭐가 있고 이런 그림이 그려지잖아요. (고시원, 원룸이) 서른개 넘게 있었을걸요? 다 구해서 평균값 매겼어요. 설문조사 내용으로 기사를 썼는데, 확실히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이 RIR 비율이 낮기도 했었고. 자취하는 학생들이 주거비로 쓰는 비용이 훨씬 높은 걸 파악하면서, 아 많이 열악하구나 했죠.


Q 대학생은 흔히 생각하기에는 소득이 없는 걸로 잡히잖아요? 그 때 도현씨는 소득을 뭘로 잡았나요?

A 저희가 다 구분해서 모든 비용에 출처를 매겼어요. 주거비를 누가 내는지, 생활비를 본인이 버는지, 등록금은 어떻게 내는지. 이런 것들을 조사했고 생활비 중에 주거비를 얼마나 쓰는지로 RIR을 했었어. 생활비의 출처가 어디든 담고 싶었던 것은 “주거비가 얼마나 쓰이는가” 였기 때문에.


Q 도현씨가 겪었다는 여러 가지 집 문제에 관련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A 1학년 때 기숙사 살았죠. 그런데 저희가 학교 기숙사 사정상, 그리고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탓에 뒤늦게 기숙사에 문의를 했었어요. 이 학교는 기숙사가 두 종류가 있는데 그냥 기숙사에 사는 거랑, 기숙사 살면서 수업을 들어야하는 게 있었어요. 저는 그걸 구분을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돈을 더 주고 후자를 선택한 거죠. 기숙사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도 모르고 뒤늦게 알아봐서요. 사실 관심도 없고 등록금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아무것도 몰랐어요. 바보였죠, 지금 생각하면. 그러고 이제 기숙사에 살게 됐는데, 1학년이 연애도 하고 동아리도 여러 개 하고 그러다보니, 수업을 챙길 겨를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강제퇴사를 당했어요. 그때가 5월 마지막 주였을 거예요. 그러고 살 데가 없었는데 마침 학보사 방이 되게 컸어요. 라꾸라꾸 침대도 있었고 이불도 있었고 에어컨도 있었고 (웃음)


Q 민폐를 저지르셨군요? (웃음)

A 그래서 학보사에서 3주 아니 거의 한 달 정도를 살면서 아침에는 엄청 새벽에 일어나서 학관 저 끝 샤워실에서 샤워하고 쫄래쫄래 오고, 근데 옷을 빨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기숙사 있는 친구한테 돈주고 부탁하고. 진짜 민폐였죠. 저는 기숙사 못 들어가니까요. 그렇게 살았어요. 근데 밤에 또 은근 무서워요, 학교가. 저벅저벅 발소리가 다 들리고요. 어쨌든 그렇게 3주 보내고,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강제로 퇴사를 당하다보니까 방학 때 사는 비용을 환불을 받았어요. 그게 48만원. 그래서 그걸 18만원과 30만원으로 나눠서 살았어요. 18만원은 학교 앞에 있는 제일 조그만 고시원에서 한 달을 살았어요. 가서 거짓말을 좀 했어요. 나 좀 있으면 군대간다, 한 달만 불가피하게 있어야하는데 한 달만 살게 해줘라, 해서 24만원짜리 방을 18만원에 살았거든요.


Q 우와 25%를 깎은 건가요? 엄청나다(웃음)

A (웃음) 진짜 절박했었거든요. 근데 (방 크기가) 진짜 작았어요. 대충 지금 떠올려보면, 침대가 2미터에 가로가 90인가 110cm. 복도가 요만큼, 책상이 요만큼. 그렇게 계산해보면 1.2평? 제일 조그만 방. 진공 상태였어요. 무슨 말이냐면, 보통 집에 있으면 진공상태가 안 느껴지잖아요? 오만가지 소음이 있으니까. 집에서 방문 닫고 자더라도 진공상태는 아니잖아요. 근데 거기는 진공 상태예요. (웃음) 사람이 진공상태면 좀 무섭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이해가 갔어요. 제 숨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요.


Q 1.2평이요?

A 지금 제가 계산해보니까 그래요.


Q 1.2평? 불법 아닌가요? 건축물대장 한번 떼볼까요. 

A 불법이겠죠. 거기 살면서 우울해진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았어요. 진짜 우울해지기 좋고, 집에 안 들어가게 되고. 일단 빨래 이런 걸 할 수가 없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제가 왜 그렇게 살았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한 달 지나고 한 달은 원룸텔이라는 데에서 30만원 주고, 원룸보단 큰 집에서. 원룸보다 진짜 조금 더 컸어요. 그래도 다행인 게 거긴 화장실이 방 안에 있었어. 그냥 정말, 화장실 있고 침대 있고 책상 있고 tv 있고 끝. 집에 거의 안 들어갔었죠.


Q 집에 안 들어가면 어디서 뭘 했나요?

A 그냥. 계속 밖에 있었죠, 학보사 했었으니까. 그래서 돈은 돈대로 나가고. 여름인데 에어컨도 제 맘대로 틀 수가 없잖아요. 중앙시스템이라 알아서 틀어주거든. 결국 2학기 때는 엄마한테 솔직히 이야기를 했어요. 기숙사 떨어졌다고. 강제 퇴사 당했다고는 말 안하고(웃음) 이젠 아시지. 상 받고 이야기했어. 엄마가 한숨 엄청 쉬시면서 말을 하지 그랬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러고 2학기 때부터는 급하게 구해서 자취를 했죠. 완전 역세권. 역곡역 와보셨나요? 내리면 바로 옆에 집이 하나 있어. 모텔들이 엄청 많은데 그 사이에 딱 하나 빌라가 있단 말이에요. 근데 밤엔 엄청 무서워요 거기 룸살롱 비슷한 데가 많고 음침해요. 거기서 1년 3개월 살았어. 그곳도 지금 생각해보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것 같아요. 4평이 안돼. 이부자리 깔고, 빨래 건조대 펼치면 공간이 거의 없거든요. 거긴 36만원. 보증금은 없었어요. 오랜만에 다 생각이 나네요. 


Q 참 어떻게든 꾸역꾸역 잘 구해서 사셨네요. (웃음)

A 그쵸. 무슨 생존게임 하듯이(웃음) 거기 딱 사니까 2학년이 끝났어요. 한 학기만 하고 딱 군대를 가기로 했었거든요. 그럼 반 년 살 집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된 집에 못 살고 또 2개월 동안 고시원에 살았어요. 그러다 진짜 운좋게 학교 홈페이지 통해서 월 35만원, 그것도 보증금 없이 부천역에 집을 구했어요. 거기서 4개월 정도 살다가 군대를 갔어요. 


Q 짧은 시간에 여러 장소를 살았네요.

A 맞아요. 그런 1학년 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주거 문제를 다뤄보자 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열악한 걸 누구보다 내가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고시원, 원룸텔 등등을 전전하며 사는 것) 절대 못하죠. 이제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1학년, 2학년 때 몸이 많이 가려웠거든요? 지금은 그런 것 하나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때는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신경도 못쓰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여기저기 열악한 환경에 치여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해요.



Q 민달팽이는 어떻게 다시 오게 되셨어요?

A 제대하고, 3개월 동안 인도에 갔다가 한국 온 게 작년 12월 말이었을걸? 그 시기에 민유에서 사무적으로 정리할 게 많았잖아요? 알바를 구한다고 해서 저도 그때 하게 됐지요. 그때 한 게 CMS 정리. 회원 분들한테 다 연락드리고 150명 정도 정리했을 거예요. 블로그를 홈페이지로 개편하면서 글 옮기기 했어요. 그리고 용역 보고서 쓰고, 오탈자라든가 문단 나누기나 문맥에 안 맞는 말 고치기 이런 것들. 그걸로 한 2주 붙잡고 있었어요. 그 외에도 잡다한 모든 것(웃음) 서류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죠. 문자 보내는 사이트의 주소록 정리하기, 같은 것들. 그런 일들을 했었어요.


Q 기본적인 업무를 지금까지 지켜보고 경험한 민달팽이는 어떤 조직인가요?

A 음... 실은 저 자체가 굉장히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학보사를 들어갔던 것도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들어간 거고 저라는 사람에게 그런 공동체를 찾아가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민유라는 공동체를 주의 깊게 관찰했던 거 같아요. 민유에서 작년에 문제상황이 있기도 했지만 그 문제를 덮지 않고 해결하려는 움직임, 과정(백서발간 등)을 지켜보면서 ‘이 공동체가 자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구나, 건강한 공동체구나.’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4호 달팽이집의 커뮤니티 약속문에 명시된 내용도 좋았어요. 성별 혹은 취향에 구애받지 않고 존중하는 그런 내용들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이 정도의 약속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이라면 사람들의 젠더감수성? 전제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달팽이집 약속문.jpg
달팽이집 4호집은요

#1 평등문화를 지향합니다
- 우리는 집 안에서 직업, 고용형태, 출신지역, 나이에 따른 위계, 정치성향, 성정체성, 인종, 종교, 학력, 사회적 지위, 성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지양합니다.
-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는 발언과 이성애중심적인 연애, 가족, 결혼관을 지양합니다.

#2 식구를 성적 대상화하지 않습니다.
- 여성, 남성으로 구별하기 보다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해 성적 대상화하거나 차별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3 함께, 그 속 개개인의 삶을 존중합니다.
- 공동체적인 삶속에 각자 개개인의 삶의 영역을 존중하여 개인의 공간과 시간, 삶의 스타일을 침해하지 않습니다. 방은 침해되지 말아야할 중요한, 오롯이 개인을 위한 공간입니다.

#4 겉모습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 입주자 혹은 예비입주자들의 겉모습을 평가하거나 비난, 비하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는 편안해야하고 외모얘기를 하지 않아도 우린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5 소통, 협력 그리고 책임
- 새로운 가족이자 공동체가 된 우리는 생활하는데 발생하는 공과금,회비,청소,시설관리 등 여러가지 집안일과 책임, 고민과 결정을 공유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지향합니다.

#6 이 모든 것은 함께 노력합니다
- 불편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아니고 상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요 우리.


Q 지금의 도현씨에게는 주거문제가 어떻게 다가오나요? 

A 1학년 때까지는 흔히 말하는 그냥 사회에 관심 좀 있는 애였거든요. 그러면 대부분 관심가지는 주제가 정치, 사회문제예요.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치제도 등 이런 건 나의 문제라고 여기면서 시위도 나가고 그랬어요. 반면 주거문제는 워낙 감도 안 잡히고 부동산이랑 연관되고 그러는데 저는 경제를 몰랐어요. 그러다보니까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2014년 2학기에 학보사에 주거 기사 쓰기 전까지 저는 그 문제를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주거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 본 기억도 없었어요.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못했어요. 근데 기사를 쓰려고 자료를 찾다보니 민유라는 단체를 모를 수가 없었죠.

 주거 문제가 이슈파이팅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민유의 힘이 엄청 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나의 중요의제가 될 수 있었고요. 이거는 번외의 이야기지만 제가 주거문제로 기사를 써서 상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줬지만 동시에 함께 이야기했던 친구가 그랬어요. 민달팽이유니온이 주거의제를 끌어오지 않았다면 언론도 이렇게 주목하지 않았을 거고 네가 자료 찾는 것도 힘들었을 거라고. 민유라는 시민단체가 이슈파이팅을 잘해서 너 기사가 파생적으로 주목도를 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말이에요.


Q 저는 개인적으로 민유가 할 수 있는 스펙트럼과 활동영역이 다양해지면서 생긴 한가지 고민이 있어요. 이제 주거가 문제라는 건 모두가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정말로” 문제다, 라는 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중이에요. 어떤 방법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A 이미 하고 있는 걸 계속해야겠죠. 다만 주거상담네트워크를 하면 좀 더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러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민유는 사회적 활동도 엄청나게 하니까. 그리고 이건 열정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역량을 쌓아야 하는 거고 시간과 노력과 시행착오와 발품 없이는 체화되지 않는 영역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가장 필요하지만 동시에 가장 힘든 사업이지 않을까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민달팽이 회원들 혹은 이 글을 보고있는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주거가 어찌보면 동떨어져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우리에게 밀접한 주제,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싶으면 민달팽이유니온의 회원이 되지 않더라도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글이나 해왔던 활동을 읽거나 접한다면 문제를 대략적이나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임대주택 대응 영상 촬영에 함께 해주셨잖아요? 어땠나요? 동영상 밖 비하인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A 저의 가장 기본적 입장은, 많은 사람들이 청년임대주택을 두고 빈민주택이라고 일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살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 그렇게 많은 청년들이 내몰린 상황이 지금 현재 상황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지금의 갈등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예요. 

 우선 주민들도 언론의 역풍을 받아서 그런지, 계속해서 취재를 당해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빈민주택을 반대한다”에서 “기업형 임대주택을 반대한다”로 바뀌었잖아요. 그때 아파트 주민 한 분과 10분 정도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분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주민들은 임대아파트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다만 5평짜리 닭장 같은 곳에서 누가 살고 싶어 하겠냐고, 그런 환경은 결국 짧게 거쳐가는 공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 아니냐. 이웃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아 미덥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죠. 현장에 가니 보다 다층적인 입장을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마냥 대립하기보다 기본 입장을 듣고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또 제가 여길 즐겁게 다닌 이유 중 하나가 뭐냐하면 민유가 되게 유연하고 즐겁게 대응하는 법을 안다는 느낌을 받아서였어요. 마냥 진지하게 싸우는 게 아니라 즐거운 게릴라 형식으로 또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게 약간 체화된 느낌? 워낙 현장에 많이 나가서 그러려나요? (웃음) 아무튼 그 과정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뿌듯했어요.

 이런 소소한 변화, 싸워서 일궈낸 변화는 분명 단체가 정체되지 않는,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크게 변화시킨 건 아닐지라도 이번처럼 작은 미션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장기적 활동의 원동력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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