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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재난 이후, 빌려쓰는 사람들과 소유자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 21대 국회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발의들에 부쳐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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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으로 먼저 흘러가는 재난 속에서 세입자, 노동자, 프리랜서 등 취약계층의 문제가 드러나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으로 누군가를 도구화해온 우리사회의 신뢰상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와중에 총선이 치러진지 어느덧 두달이 지났다. 선거과정에서 정치는 무너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채 공학적 이합집산만 보여주었기에 21대 국회에 요구되는 책임의 무게는 어느 때보다 더 무거운 것이었다. 최근 무주택자의 날(6.3.)을 맞아 여러 의원들이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그 무게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기에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세입자의 계속거주권 보장과 주거비 부담 완화를 통해 우리사회의 기울어진 임대차 운동장이 바로 잡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빌려쓰는 사람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나선 정치에 대해 소유한 사람들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세입자를 동등한 시민권자로 인정해본 경험이 없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듯 계속거주권의 보장 등이 ‘재산권의 침해’이며 ‘임대인은 세금만 내는 존재인가’하는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불평을 전달하는 누군가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세입자들이 깡통전세에 ‘재산권’을 침해당하고 있을 때는 왜 침묵하였는가라는 점이다. ‘청년들이 방 한 칸에 살면서 매달 50만 원씩 1년에 600만 원을 월세로 내고 있을 때, 30억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의 종부세가 그것보다 적은’ 불평등에는 왜 침묵하였는가.

몇몇 부끄러움을 아는 누군가들은 빌려쓰는 사람들의 주거권 보장이 ‘시장에 대한 무지’이며 ‘선의로 포장된 채 세입자의 고통만 가중’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위적 ‘규제’가 부작용을 가져와 임대주택의 주거환경이 더 열악해지고 주거비가 급등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척한다. 이런 동정심은 청년과 취약계층이 불법건축물과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생명권’을 위협받고 있을 때는 어디있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세입자들을 걱정하는 척하는 가식 속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통한 주거권 보장은 30년 째 멈춰있다. 비적정주거의 증가와 주거비 급등이 우려된다면 그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할 일이지 세입자의 권리를 한 세대 더 뒤처지게할 것은 아니다.


계속거주권을 보장하고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는 법개정은 빌려쓰는 사람들의 주거권 보장을 넘어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개혁이기도 하다. 우리사회는 지난 30년 동안 세입자들의 불안정 주거를 방치함으로써 모두가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신화를 시민들에게 심어주었다. 청년들은 횡행하는 소유한 사람들의 갭투자 속에서 자신들의 전재산인 월세보증금과 전세금을 잃어버렸다. 여성들은 불균형한 임대차권력관계에서 임대인에 의한 심각한 무단주거침입에 시달리고 있다. 세입자들은 빈번히 일어나는 여러 권리 침해에서 벗어나고자 은행의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하면서까지 집을 소유하려고 하여왔다. 소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신화가 만든 악순환 속에서 한정된 자원인 주거의 비용은 천정부지 치솟을 뿐이었고, 결국 어느 누구도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태만 초래할 뿐이다. 우로보로스의 고리는 결국 뱀이 스스로의 꼬리를 계속 먹어 모두가 불행해지는 파국에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가소유의 신화 고리를 끊는 것은 모두가 소유한 사람들이 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빌려쓰더라도 동등한 시민권자로 존중받을 수 있게 주거권을 보장하는 균형있는 임대차관계 마련에 있다.


나아가 이 개혁은 코로나19 재난이 우리사회에 남긴 과제를 풀어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재난 속에서 빌려쓰는 사람들은 다양하게 고통받았다. 기울어진 임대차 권력관계 속에서 세입자들은 급여삭감, 실업 등 경제적 사정변동에도 불구하고 임대료의 인하를 요구할 수 없었다. 이미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이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차임을 연체하거나 철거지역에 살아가고 있는 경우 집에서 쫓겨남으로써 사회적 거리를 두어 스스로의 생명을 지킬 권리를 박탈당하기까지 하였다. 세입자들이 겪고 있는 재난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빌려쓰는 사람들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 탓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난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세입자와 임대인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는 적극적 노력의 필요성이다.


소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사회에서 빌려쓰는 사람들도 동등한 시민권자로 존중받는 사회로의 전환은 이처럼 누가 누구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가소유의 악순환과 재난이 드러낸 고름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우리사회는 지난 30년 간 소유한 사람들만을 위해 이 약을 먹지 않았고 그 결과 재난 하에서 누군가는 ‘생명권’을 박탈당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세입자와 소유자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적극적 조치가 시급하다. 과도한 주거비 인상없이 원하는 기간만큼 내 집에서 살아갈 수 있고, 임대인의 투자실패로 세입자의 재산권이 침해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보장이 필요한 것이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이를 위해 전월세신고제, 기한 없는 계약갱신과 임대료 상한제, 보증금 보호 강화. 비교기준 임대료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을 촉구한다. 나아가 우리는 빌려쓰는 사람들도 시민으로 인정하는 사회가 자리잡을 때까지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을 배척하는 그 어떠한 비난과 가식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020년 6월 12일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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