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성명]
국일고시원 화재참사 5주기,
더는 미룰 수 없다
2018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거주자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친 참사로부터 5년이 흘렀다. 해당 고시원은 당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규정이 적용(2009.7.8.)되기 이전에 개설된 데다, 업주의 신청으로 서울시 ‘노후 고시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건물주의 거부로 스프링클러조차 없던 상황이었다. 소화기도 없었고, 화재경보음도 작동하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창문과 에어컨 배관을 타고 탈출했고 피해는 창문이 없던 방들에 집중됐다. 창문 있는 방이 없는 방보다 월 4만 원 더 비쌌다.
정부와 서울시는 고시원과 같은 비적정 거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집이 없거나 열악한 거처에서 살던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며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 마련과 적정 주거 보장을 촉구한다.
미루는 대책, 반복되는 참사
참사 이후 정부와 서울시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중이용업소법」(2020.06.09.), 「건축법시행령」(2020.12.15.), 「서울특별시 건축 조례」(2021.12.30.)가 차례대로 개정되며 고시원에 대해 일정 부분 규제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없었다.
정부는 「소방시설법」과 「다중이용업소법」 개정(2020.06.09.)으로 모든 고시원에 간이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2022.06.30.기한) 했다. 그러나 작년 영등포의 한 고시원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이 잡히지 않아 거동이 불편했던 두 사람이 사망하는 화재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스프링클러’로 대표되는 소방설비는 거주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 설비일 뿐 화재 피해를 증폭시키는 과밀한 방, 좁은 복도, 협소한 창문 등 고시원의 열악한 주거환경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거주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건축물관리법」 제정(2020.05.01.)으로 화재안전성능보강을 의무화(2025.12.31.기한)한 바 있다. 대상은 피난약자이용시설, 다중이용업소 중에서 3층 이상,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하고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화재 시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건축물이다. 공사비를 일부 지원하지만, 올해 8월 기준 대상 고시원 31개 동 중 4개 동만 보강이 끝나 여전히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정부는 「건축법시행령」 개정(2020.12.15.)으로 “실별 최소 면적, 창문의 설치 및 크기 등의 기준”을 건축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하였다. 하지만 최소실면적, 창 설치 의무화, 시설별 사용 인원 제한 등의 기준을 만들지 않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해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할 중앙정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건축 조례」를 개정(2021.12.30.)했는데 최소 실 면적을 7㎡ 이상(화장실이 포함된 실은 9㎡)로 두고 실마다 외기에 탈출 가능한 창문을 폭 0.5m 이상, 높이 1.0m 이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부칙에 의해 시행일(2022.07.01.) 이후 신규 내지 변경 개설된 고시원에만 적용되며 기존 고시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기존 고시원에 대한 규제를 미룰 때마다 반복해서 화재 참사가 벌어졌다. 국일고시원은 「다중이용업소법」으로 고시원이 규제되기 시작한 2009.7.1. 이전 건축된 노후 고시원이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주거품질 규제를 도입하더라도 대다수의 고시원에 적용할 수 없다면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할 것이다.
더는 집이 아닌 곳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시간이 흐르는 사이 고시원을 집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화재로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소방청 ‘다중이용업소 화재 발생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7년~2021년) 고시원에서 243건 불이나 36명이 다치고 9명 사망했다. 전체 다중이용업소 화재 사망자(17명)의 절반 이상이 고시원에서 발생한 셈이다. 그간 고시원과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의 수는 2017년 36만 9501가구에서 2022년 44만 3126가구으로 20% 가까이 급증했다. 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가 35.7%(15만8374가구)에 달한다.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66.3%)이 소득 하위 1~2분위에 해당한다. 정책의 부재 속 관리·감독할 소관 부처도 없는 자유업종인 고시원 거주자의 안전은 사실상 방치되는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를 ‘집이 없어 생긴 죽음’이라 말해왔다.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의 온전한 주거권 보장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주거 정책의 핵심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원이나 삭감했다. 정부의 건설형 공공임대주택 공급 실적도 9월말 기준 계획 대비 10%도 달성하지 못했다. 오세훈 시장은 작년 행정감사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진심이고, 공급 의지도 확고”하다고 했으나, 서울시 매입임대주택 공급계획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고, 공급 실적 또한 매년 계획 대비 크게 미달하고 있다. 올해 매입임대주택 사업 실적은 지난 9월 기준 목표치 5250호 대비 6.5%인 341호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똑같은 참사와 죽음을 반복하는가. 가난이 집답지 못한 집으로, 집답지 못한 집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잘못된 고리를 우리는 언제쯤 끊어낼 수 있는가. 망연히 질문하기에 답은 언제나 명확했다. 모든 이들에게 지금 당장 주거권을 보장하라
23.11.09
2023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
[추모성명]
국일고시원 화재참사 5주기,
더는 미룰 수 없다
2018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거주자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친 참사로부터 5년이 흘렀다. 해당 고시원은 당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규정이 적용(2009.7.8.)되기 이전에 개설된 데다, 업주의 신청으로 서울시 ‘노후 고시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건물주의 거부로 스프링클러조차 없던 상황이었다. 소화기도 없었고, 화재경보음도 작동하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창문과 에어컨 배관을 타고 탈출했고 피해는 창문이 없던 방들에 집중됐다. 창문 있는 방이 없는 방보다 월 4만 원 더 비쌌다.
정부와 서울시는 고시원과 같은 비적정 거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집이 없거나 열악한 거처에서 살던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며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 마련과 적정 주거 보장을 촉구한다.
미루는 대책, 반복되는 참사
참사 이후 정부와 서울시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중이용업소법」(2020.06.09.), 「건축법시행령」(2020.12.15.), 「서울특별시 건축 조례」(2021.12.30.)가 차례대로 개정되며 고시원에 대해 일정 부분 규제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없었다.
정부는 「소방시설법」과 「다중이용업소법」 개정(2020.06.09.)으로 모든 고시원에 간이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2022.06.30.기한) 했다. 그러나 작년 영등포의 한 고시원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이 잡히지 않아 거동이 불편했던 두 사람이 사망하는 화재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스프링클러’로 대표되는 소방설비는 거주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 설비일 뿐 화재 피해를 증폭시키는 과밀한 방, 좁은 복도, 협소한 창문 등 고시원의 열악한 주거환경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거주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건축물관리법」 제정(2020.05.01.)으로 화재안전성능보강을 의무화(2025.12.31.기한)한 바 있다. 대상은 피난약자이용시설, 다중이용업소 중에서 3층 이상,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하고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화재 시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건축물이다. 공사비를 일부 지원하지만, 올해 8월 기준 대상 고시원 31개 동 중 4개 동만 보강이 끝나 여전히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정부는 「건축법시행령」 개정(2020.12.15.)으로 “실별 최소 면적, 창문의 설치 및 크기 등의 기준”을 건축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하였다. 하지만 최소실면적, 창 설치 의무화, 시설별 사용 인원 제한 등의 기준을 만들지 않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해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할 중앙정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건축 조례」를 개정(2021.12.30.)했는데 최소 실 면적을 7㎡ 이상(화장실이 포함된 실은 9㎡)로 두고 실마다 외기에 탈출 가능한 창문을 폭 0.5m 이상, 높이 1.0m 이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부칙에 의해 시행일(2022.07.01.) 이후 신규 내지 변경 개설된 고시원에만 적용되며 기존 고시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기존 고시원에 대한 규제를 미룰 때마다 반복해서 화재 참사가 벌어졌다. 국일고시원은 「다중이용업소법」으로 고시원이 규제되기 시작한 2009.7.1. 이전 건축된 노후 고시원이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주거품질 규제를 도입하더라도 대다수의 고시원에 적용할 수 없다면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할 것이다.
더는 집이 아닌 곳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시간이 흐르는 사이 고시원을 집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화재로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소방청 ‘다중이용업소 화재 발생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7년~2021년) 고시원에서 243건 불이나 36명이 다치고 9명 사망했다. 전체 다중이용업소 화재 사망자(17명)의 절반 이상이 고시원에서 발생한 셈이다. 그간 고시원과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의 수는 2017년 36만 9501가구에서 2022년 44만 3126가구으로 20% 가까이 급증했다. 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가 35.7%(15만8374가구)에 달한다.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66.3%)이 소득 하위 1~2분위에 해당한다. 정책의 부재 속 관리·감독할 소관 부처도 없는 자유업종인 고시원 거주자의 안전은 사실상 방치되는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를 ‘집이 없어 생긴 죽음’이라 말해왔다.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의 온전한 주거권 보장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주거 정책의 핵심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원이나 삭감했다. 정부의 건설형 공공임대주택 공급 실적도 9월말 기준 계획 대비 10%도 달성하지 못했다. 오세훈 시장은 작년 행정감사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진심이고, 공급 의지도 확고”하다고 했으나, 서울시 매입임대주택 공급계획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고, 공급 실적 또한 매년 계획 대비 크게 미달하고 있다. 올해 매입임대주택 사업 실적은 지난 9월 기준 목표치 5250호 대비 6.5%인 341호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똑같은 참사와 죽음을 반복하는가. 가난이 집답지 못한 집으로, 집답지 못한 집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잘못된 고리를 우리는 언제쯤 끊어낼 수 있는가. 망연히 질문하기에 답은 언제나 명확했다. 모든 이들에게 지금 당장 주거권을 보장하라
23.11.09
2023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