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회원,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민달팽이유니온 사무국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는 가원입니다. 작년 말에는 참 연말 분위기 안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는데, 어느새 새해가 시작되어 버렸어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붉은 말의 해라고 하던데, TMI 이지마는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가 관우라서, 괜시리 붉은 말의 해가 반가운 마음입니다. ‘적토마처럼 쌩쌩 시원하게 내달리고 싶다!’ 는 생각도 해보고요. 조만간 초록공터에 가서 뛰어야겠어요ㅎㅎ
21년에 첫 상근을 시작하며 상근자수첩을 쓴 뒤로 5년 만에 다시 쓰는 글이라 상당히 어색합니다. 앞선 상근자수첩을 괜히 뒤적이며…(다들 너무 재미있게 잘 쓰셨네요ㅜㅜ) 나는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야 좋을까 하는 고민도 있고요. 다소 어수선할 수는 있겠지만, 5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민달팽이라는 곳에서 함께하며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들을 소환해보려고 해요. 그때 느낀 것도 함께요.

(마치 펜시브에 기억을 넣는 것처럼… 기억을 꺼내야 합니다…)

하나, ‘임대인 갑질 방치하는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
공유하고 싶은 첫번째 장면은, 2021년 3월 19일에 있었던 서초구 소재의 한 역세권 청년주택에서의 문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입니다. 상근을 막 시작한 달이어서, 제가 처음으로 준비에 참여한 기자회견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전날 밤새 피켓과 자료를 준비하고, 현수막도 처음으로 만들어 봤는데요. 이 활동을 꼽은 이유는, 현재 청년안심주택(구 역세권 청년주택)의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서울시의 대처는 더 미진해지는 흐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 기자회견 이후로, 민유는 역세권 청년주택의 운영 상의 문제를 다루다가 가장 최근에는 청년안심주택에서 일어난 보증금 미반환 문제까지 다루게 되었어요. 활동과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저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민달팽이가 청년 주거 정책을 감시하고 대응하는 최근 경향의 시작에 있었던 기자회견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책 개선 요구는 늘 하는 활동이지만, 최근 몇 년 간은 좀 더 구체적으로 공공의 역할과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활동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그동안의 활동을 잘 모두어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함께 해주실 거죠?

(농성장에 눈 많이 내린 어느 날, 공공임대에 살고 싶은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둘,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
두 번째 이야기는 역시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농성이었던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이에요. 시기는 2022년 10월 17일부터 12월 24일. 이 때의 감상은 당시에 썼던 독후감으로 대체하고 싶습니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의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이라는 책을 읽고 쓴 것인데요, 농성장 북토크에서 후기를 부탁받아 실로 오랜만에 독후감을 썼던 기억입니다. 초겨울에 진행했던 농성은 물론 겨울이 깊어질수록 춥고 힘들었지만… 어쩐지 마음만은 편했던 기억이에요. 텐트를 치고 잠을 자니, 이 길이, 땅이 정말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또 농성장에는 민쿱 이사회도 하고, 회원 빵용이 실력발휘해 준 오뎅탕도 끓여 먹고, 지지 방문해준 민달팽이들과도 즐거운 추억들이 있지요!
아무튼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서... 이 책을 ‘굳이’ 한 줄로 묘사하자면 ‘“나 서울 좋아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꼭 쥐어 주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곧 개정판 신작이 나온다고 합니다!!! 개정판에는 이 농성 이야기도 함께 실린다고 하니, 새 책이 나오면 또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ㅎㅎ
농성장 밤샘 지키미 하던 날, 자기 전 2-3시간 만에 정말 후루룩 읽었다. 대부분 잘 몰랐던 사실을 더 잘 알게 되고, 속으로 같이 분노하거나 눈물 흘리면서 읽기도 했지만, 이런 주제를 내가 재미있게 읽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자신의 삶터를, 일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들의 생각과 말이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 만큼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 최근 읽은 어떤 책보다도 참 거침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이 책에는 작가 본인의 산책 취미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한때 산책도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서울은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녔던 내가, 내 의지대로 살기로 선택한 첫번째 도시다. 가난한 내가 내 능력만으로 이 도시에 발 붙일 곳을 찾을 수 없어 절망스러울 때, 돈을 내지 않으면 쉬이 앉을 곳을 찾을 수 없는 이 도시가, 보행자보다 자동차의 통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이 도시가, 폐쇄형 아파트 단지가 가득한 이 도시가 나를 자꾸만 밀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아 산책도 특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오히려 오기로 더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를 자꾸 내 발로 더 밟아야지 밀려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길 걸어보지도 않고, 살아보지고 않고,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땅을 자기 맘대로 한다는 게 너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잘 모르는 서울의 골목골목을 탐험하는 것이 한 때의 시간 보내기 방법이었다.
이 책에도 그렇게 내가 걸었던 곳들이 나온다. 그런데 내가 걸으면서 본 풍경은 작가가 설명하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책에서 묘사하는 것들이 이미 지워지고 없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기억하려는 시도조차 저지된 이후 나는 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그 시차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는다. 가끔 유럽 나라들의 도심 속에 보존된 멋진 유적지를 부러워하는 목소리를 듣곤 한다. 한국은 그 곳에 여지 없이 높다란 새건물이 들어선 경우가 많다. 더 큰, 더 비싼, 새 아파트를 짓고 싶어 싶어하는 욕망이 안개처럼 자욱한 나라에서 이런 생각들은 그저 찰나의 부러움으로만 내뿜어지고 곧 사라진다. 아이러니하다.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독립문이 있는 동네를 갈 때마다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을 보면서 '왜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을 뜬금없이 이 아파트 옆에, 이렇게 조그마하게 만들었나? 여기서만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었던 것은 그 기념관이 아니라, 바로 옥바라지 골목을 쫓아내고 들어 선 경희궁 롯데캐슬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역사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 사건을 경험한 삶에 대해 이해할 기회를 얻기 위해, 우리는 박물관뿐만 아닌 옥바라지 골목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모든 목차를 의미있게 읽었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철거민 강정희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폭력적인 강제 철거를 맨몸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이야기가 충격적이기도 하거니와, 책 마지막에 실린 그의 밝은 얼굴 표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을 덮고 자려고 누웠는데, 노숙투쟁이나 망루투쟁으로 강제철거에 저항한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국회 앞은 한밤중에도 꽤나 시끄럽다. 차와 오토바이가 국회대로를 쉴새 없이 지나고, 또 춥지 않으려고 켠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도 몇 대씩 들린다. 그래도 내 방보다 큰 천막에서, 전기장판도 깔고. 나는 꽤나 팔자좋게(?) 농성을 하고 있는 셈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면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 어딘가 겸연쩍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삭감되면 그 집도 더 이상 우리집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는 것이지만) 이 천막마저 빼앗기면 돌아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은 무슨 심정으로 잠에 들었을까. 그때의 기억으로 지금도 잠을 편하게 못잔다는 강정희 씨의 말이 음성으로 귀에 들리는 듯 했다. 국회 앞엔 지금 농성 '단지'가 차려졌지만, 잠을 자면서까지 천막을 지키는 곳은 몇 채 없다.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읽고, 우리가 굳이 이 추운 겨울, 국회 앞 길바닥에서 잠을 자면서까지 이곳을 지키는 이유를 잘 알게 되었다.
어떠한 공간을 생동감 있도록 만드는 것은, 애초에 거기 존재 했던 사람들이다. 서울은 두 겹의 도시다. 여기 존재한 사람들의 기억을 깔고 올라선 폭력적인 자본의 욕망이 높다란 곳이 서울이다. 그러나 감히 그러한 시도가 쫓겨난 이들과 그들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가만 두고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많은 사람이 읽게 하고, 더 많이 기억해야겠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 말하고 싶다. 당신은 서울을 왜 좋아하는가? 당신이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
셋, 전세사기와 임장
2023년 9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무국 동료들과 함께 화곡동에 전세사기 피해주택 설문을 나간 길이었지요. 2명씩 조를 짜서 피해주택을 찾아다니던 길이었어요. 기후 위기로 인해 9월도 여전히 불볕 더위… 화곡동 언덕은 가팔라서 마을 버스를 타고, 중간중간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세입자 분들을 만나는 것과, 현장에서 바로 조사서 작성을 부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반가웠던 저는 한 주택에서 몇 청년들을 마주쳤습니다. 저는 그들이 해당 주택에 사는 피해자라고 생각했고, 그들은 저를 경매 임장 나온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사정에 신경이 쏠린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눈만 마주치며 3초가 흐르고… ‘저는 전세사기 피해사례 조사 중이다’ 고 하니 ‘아…’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다시 경매 임장 나오신거냐 되물으니 제대로 못들은 건지 대답을 해주진 않더군요. 그들에게서는 어쩐지 여름 산책을 나온 것 같은 경쾌하고 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런 느낌을 느끼는 제 자신이 당황스러워서 다음 주소에 얼른 가야지 생각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무어라 말을 건넸어야 하진 않았나, 오늘 따라 가방 안에 리플렛은 왜 아무것도 없었나… 내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그 곳이 전세사기 피해주택이었다는 사실을 몰랐겠지? 알고 있다면 그럴 수 없었겠지? 하는 생각에 슬픈 기분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임장을 나올 수가 있나’ 하는 참담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경매 임장을 도는 젊은 세대의 불안을 도대체 무엇으로 해소할 수 있는 건가 하는 고민이 더 깊습니다.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고민이 아니겠지요.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이기도 해요.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 때에도!!! 다시 다짐, 또 다짐해요)

(속시원했던 탄핵 축하 파티 날)
넷, 계엄, 탄핵, 그리고 민달팽이
2024년 12월,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죠. 이후로 4개월은 광장으로 매주 출근 도장을 찍었는데요, 추위도 깃발의 무게도, 걱정도, 불안도, 위기 의식도 잠시 잊고 ‘다시 만난 세계’와 ‘불나비’를 목청껏 부를 수 있었던 건… 매주 만나는 민달팽이들의 얼굴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힘든 겨울이기도 했지만 어느 때보다 민달팽이를 많이 만난 겨울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광장에 나가면 누군가가 있다!’는 감각이 참으로 든든했어요.

(그냥 제가 전을 참 잘 부친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탄핵의 기쁨을 담아서 두배로 잘 나온 것 같습니다...)
다섯, 퍼블리셔스 테이블
작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10월에 회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치러냈던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대한 소회를 남기고 싶어요. (활동 후기를 아직 제대로 못썼는데 조만간 찾아올 예정입니다…) 회원 빵용, 지민, 경희님과 함께 3일 동안 100명이 넘는 ‘집구하기 가이드북’의 예비 독자 분들을 만났습니다. 3일 동안 목이 마르고 닳도록 집구하기 가이드북을 소개하고, 또 소개했는데요. 신기한 것은 민달팽이를 이미 알고 말 걸어주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마주하는 날도 있구나. 하는 반가움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민달팽이의 운동을 알리고, 또 세입자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닿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 부스 작가님이 찍어주신 느낌 좋은 사진)
이외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참 많지만 한번에 풀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다음으로 기약해보겠습니다.
이 상근자 수첩을 쓰며 11기 선거 때 썼던 출마 선언을 다시 읽어보았는데요, ‘집을 권리가 아닌 이윤과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의 속성과 싸워 이기는 길 위에, 민달팽이유니온과 우리의 활동이 있다’고 썼더군요. 그리고 ‘이 길’에서 한 걸음 더 걸어 나가겠다고 썼는데, 한 걸음 떼기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모이면 분명히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장(자본)의 힘보다는 인간의 힘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회원 여러분을 만나면 느낍니다. 올 한해도 자주 함께 합시다! 민달팽이가 15살이 되었어요, 벌써!
정말 뜬금없지만 마지막으로 드라마 하나 추천해도 될까요?

금세기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혀야 할... '브러쉬 업 라이프' 라는 작품입니다. 일본 드라마이고요, '어느 가족', '괴물' 등으로 익숙하실 안도 사쿠라 주연이에요. 그 어떤 스포도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처음은 조금 루즈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견디고 보면 상당한 감동 그리고 재미를 느끼실 수 있어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민달팽이 회원,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민달팽이유니온 사무국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는 가원입니다. 작년 말에는 참 연말 분위기 안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는데, 어느새 새해가 시작되어 버렸어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붉은 말의 해라고 하던데, TMI 이지마는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가 관우라서, 괜시리 붉은 말의 해가 반가운 마음입니다. ‘적토마처럼 쌩쌩 시원하게 내달리고 싶다!’ 는 생각도 해보고요. 조만간 초록공터에 가서 뛰어야겠어요ㅎㅎ
21년에 첫 상근을 시작하며 상근자수첩을 쓴 뒤로 5년 만에 다시 쓰는 글이라 상당히 어색합니다. 앞선 상근자수첩을 괜히 뒤적이며…(다들 너무 재미있게 잘 쓰셨네요ㅜㅜ) 나는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야 좋을까 하는 고민도 있고요. 다소 어수선할 수는 있겠지만, 5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민달팽이라는 곳에서 함께하며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들을 소환해보려고 해요. 그때 느낀 것도 함께요.
(마치 펜시브에 기억을 넣는 것처럼… 기억을 꺼내야 합니다…)
하나, ‘임대인 갑질 방치하는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
공유하고 싶은 첫번째 장면은, 2021년 3월 19일에 있었던 서초구 소재의 한 역세권 청년주택에서의 문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입니다. 상근을 막 시작한 달이어서, 제가 처음으로 준비에 참여한 기자회견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전날 밤새 피켓과 자료를 준비하고, 현수막도 처음으로 만들어 봤는데요. 이 활동을 꼽은 이유는, 현재 청년안심주택(구 역세권 청년주택)의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서울시의 대처는 더 미진해지는 흐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 기자회견 이후로, 민유는 역세권 청년주택의 운영 상의 문제를 다루다가 가장 최근에는 청년안심주택에서 일어난 보증금 미반환 문제까지 다루게 되었어요. 활동과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저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민달팽이가 청년 주거 정책을 감시하고 대응하는 최근 경향의 시작에 있었던 기자회견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책 개선 요구는 늘 하는 활동이지만, 최근 몇 년 간은 좀 더 구체적으로 공공의 역할과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활동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그동안의 활동을 잘 모두어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함께 해주실 거죠?
(농성장에 눈 많이 내린 어느 날, 공공임대에 살고 싶은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둘,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
두 번째 이야기는 역시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농성이었던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이에요. 시기는 2022년 10월 17일부터 12월 24일. 이 때의 감상은 당시에 썼던 독후감으로 대체하고 싶습니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의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이라는 책을 읽고 쓴 것인데요, 농성장 북토크에서 후기를 부탁받아 실로 오랜만에 독후감을 썼던 기억입니다. 초겨울에 진행했던 농성은 물론 겨울이 깊어질수록 춥고 힘들었지만… 어쩐지 마음만은 편했던 기억이에요. 텐트를 치고 잠을 자니, 이 길이, 땅이 정말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또 농성장에는 민쿱 이사회도 하고, 회원 빵용이 실력발휘해 준 오뎅탕도 끓여 먹고, 지지 방문해준 민달팽이들과도 즐거운 추억들이 있지요!
아무튼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서... 이 책을 ‘굳이’ 한 줄로 묘사하자면 ‘“나 서울 좋아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꼭 쥐어 주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곧 개정판 신작이 나온다고 합니다!!! 개정판에는 이 농성 이야기도 함께 실린다고 하니, 새 책이 나오면 또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ㅎㅎ
농성장 밤샘 지키미 하던 날, 자기 전 2-3시간 만에 정말 후루룩 읽었다. 대부분 잘 몰랐던 사실을 더 잘 알게 되고, 속으로 같이 분노하거나 눈물 흘리면서 읽기도 했지만, 이런 주제를 내가 재미있게 읽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자신의 삶터를, 일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들의 생각과 말이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 만큼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 최근 읽은 어떤 책보다도 참 거침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이 책에는 작가 본인의 산책 취미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한때 산책도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서울은 어린 시절 이사를 많이 다녔던 내가, 내 의지대로 살기로 선택한 첫번째 도시다. 가난한 내가 내 능력만으로 이 도시에 발 붙일 곳을 찾을 수 없어 절망스러울 때, 돈을 내지 않으면 쉬이 앉을 곳을 찾을 수 없는 이 도시가, 보행자보다 자동차의 통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이 도시가, 폐쇄형 아파트 단지가 가득한 이 도시가 나를 자꾸만 밀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아 산책도 특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오히려 오기로 더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를 자꾸 내 발로 더 밟아야지 밀려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길 걸어보지도 않고, 살아보지고 않고,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땅을 자기 맘대로 한다는 게 너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잘 모르는 서울의 골목골목을 탐험하는 것이 한 때의 시간 보내기 방법이었다.
이 책에도 그렇게 내가 걸었던 곳들이 나온다. 그런데 내가 걸으면서 본 풍경은 작가가 설명하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책에서 묘사하는 것들이 이미 지워지고 없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기억하려는 시도조차 저지된 이후 나는 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그 시차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는다. 가끔 유럽 나라들의 도심 속에 보존된 멋진 유적지를 부러워하는 목소리를 듣곤 한다. 한국은 그 곳에 여지 없이 높다란 새건물이 들어선 경우가 많다. 더 큰, 더 비싼, 새 아파트를 짓고 싶어 싶어하는 욕망이 안개처럼 자욱한 나라에서 이런 생각들은 그저 찰나의 부러움으로만 내뿜어지고 곧 사라진다. 아이러니하다.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독립문이 있는 동네를 갈 때마다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을 보면서 '왜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을 뜬금없이 이 아파트 옆에, 이렇게 조그마하게 만들었나? 여기서만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었던 것은 그 기념관이 아니라, 바로 옥바라지 골목을 쫓아내고 들어 선 경희궁 롯데캐슬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역사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 사건을 경험한 삶에 대해 이해할 기회를 얻기 위해, 우리는 박물관뿐만 아닌 옥바라지 골목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모든 목차를 의미있게 읽었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철거민 강정희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폭력적인 강제 철거를 맨몸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이야기가 충격적이기도 하거니와, 책 마지막에 실린 그의 밝은 얼굴 표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을 덮고 자려고 누웠는데, 노숙투쟁이나 망루투쟁으로 강제철거에 저항한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국회 앞은 한밤중에도 꽤나 시끄럽다. 차와 오토바이가 국회대로를 쉴새 없이 지나고, 또 춥지 않으려고 켠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도 몇 대씩 들린다. 그래도 내 방보다 큰 천막에서, 전기장판도 깔고. 나는 꽤나 팔자좋게(?) 농성을 하고 있는 셈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면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 어딘가 겸연쩍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삭감되면 그 집도 더 이상 우리집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는 것이지만) 이 천막마저 빼앗기면 돌아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은 무슨 심정으로 잠에 들었을까. 그때의 기억으로 지금도 잠을 편하게 못잔다는 강정희 씨의 말이 음성으로 귀에 들리는 듯 했다. 국회 앞엔 지금 농성 '단지'가 차려졌지만, 잠을 자면서까지 천막을 지키는 곳은 몇 채 없다.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읽고, 우리가 굳이 이 추운 겨울, 국회 앞 길바닥에서 잠을 자면서까지 이곳을 지키는 이유를 잘 알게 되었다.
어떠한 공간을 생동감 있도록 만드는 것은, 애초에 거기 존재 했던 사람들이다. 서울은 두 겹의 도시다. 여기 존재한 사람들의 기억을 깔고 올라선 폭력적인 자본의 욕망이 높다란 곳이 서울이다. 그러나 감히 그러한 시도가 쫓겨난 이들과 그들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가만 두고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많은 사람이 읽게 하고, 더 많이 기억해야겠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 말하고 싶다. 당신은 서울을 왜 좋아하는가? 당신이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셋, 전세사기와 임장
2023년 9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무국 동료들과 함께 화곡동에 전세사기 피해주택 설문을 나간 길이었지요. 2명씩 조를 짜서 피해주택을 찾아다니던 길이었어요. 기후 위기로 인해 9월도 여전히 불볕 더위… 화곡동 언덕은 가팔라서 마을 버스를 타고, 중간중간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세입자 분들을 만나는 것과, 현장에서 바로 조사서 작성을 부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반가웠던 저는 한 주택에서 몇 청년들을 마주쳤습니다. 저는 그들이 해당 주택에 사는 피해자라고 생각했고, 그들은 저를 경매 임장 나온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사정에 신경이 쏠린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눈만 마주치며 3초가 흐르고… ‘저는 전세사기 피해사례 조사 중이다’ 고 하니 ‘아…’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다시 경매 임장 나오신거냐 되물으니 제대로 못들은 건지 대답을 해주진 않더군요. 그들에게서는 어쩐지 여름 산책을 나온 것 같은 경쾌하고 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런 느낌을 느끼는 제 자신이 당황스러워서 다음 주소에 얼른 가야지 생각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무어라 말을 건넸어야 하진 않았나, 오늘 따라 가방 안에 리플렛은 왜 아무것도 없었나… 내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그 곳이 전세사기 피해주택이었다는 사실을 몰랐겠지? 알고 있다면 그럴 수 없었겠지? 하는 생각에 슬픈 기분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임장을 나올 수가 있나’ 하는 참담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경매 임장을 도는 젊은 세대의 불안을 도대체 무엇으로 해소할 수 있는 건가 하는 고민이 더 깊습니다.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고민이 아니겠지요.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이기도 해요.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 때에도!!! 다시 다짐, 또 다짐해요)
(속시원했던 탄핵 축하 파티 날)
넷, 계엄, 탄핵, 그리고 민달팽이
2024년 12월,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죠. 이후로 4개월은 광장으로 매주 출근 도장을 찍었는데요, 추위도 깃발의 무게도, 걱정도, 불안도, 위기 의식도 잠시 잊고 ‘다시 만난 세계’와 ‘불나비’를 목청껏 부를 수 있었던 건… 매주 만나는 민달팽이들의 얼굴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힘든 겨울이기도 했지만 어느 때보다 민달팽이를 많이 만난 겨울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광장에 나가면 누군가가 있다!’는 감각이 참으로 든든했어요.
(그냥 제가 전을 참 잘 부친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탄핵의 기쁨을 담아서 두배로 잘 나온 것 같습니다...)
다섯, 퍼블리셔스 테이블
작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10월에 회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치러냈던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대한 소회를 남기고 싶어요. (활동 후기를 아직 제대로 못썼는데 조만간 찾아올 예정입니다…) 회원 빵용, 지민, 경희님과 함께 3일 동안 100명이 넘는 ‘집구하기 가이드북’의 예비 독자 분들을 만났습니다. 3일 동안 목이 마르고 닳도록 집구하기 가이드북을 소개하고, 또 소개했는데요. 신기한 것은 민달팽이를 이미 알고 말 걸어주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마주하는 날도 있구나. 하는 반가움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민달팽이의 운동을 알리고, 또 세입자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닿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 부스 작가님이 찍어주신 느낌 좋은 사진)
이외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참 많지만 한번에 풀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다음으로 기약해보겠습니다.
이 상근자 수첩을 쓰며 11기 선거 때 썼던 출마 선언을 다시 읽어보았는데요, ‘집을 권리가 아닌 이윤과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의 속성과 싸워 이기는 길 위에, 민달팽이유니온과 우리의 활동이 있다’고 썼더군요. 그리고 ‘이 길’에서 한 걸음 더 걸어 나가겠다고 썼는데, 한 걸음 떼기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모이면 분명히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장(자본)의 힘보다는 인간의 힘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회원 여러분을 만나면 느낍니다. 올 한해도 자주 함께 합시다! 민달팽이가 15살이 되었어요, 벌써!
정말 뜬금없지만 마지막으로 드라마 하나 추천해도 될까요?
금세기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혀야 할... '브러쉬 업 라이프' 라는 작품입니다. 일본 드라마이고요, '어느 가족', '괴물' 등으로 익숙하실 안도 사쿠라 주연이에요. 그 어떤 스포도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처음은 조금 루즈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견디고 보면 상당한 감동 그리고 재미를 느끼실 수 있어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