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민달팽이

민달팽이의 이야기

[2015년 9월호 이달의회원] 이건 좀 심하지않나 싶다면 같이 풀어갑시다! 표류미님

이달의 회원은 청년의회에서 의정지원단으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민달팽이유니온을 알게되고 가입하신 표류미님입니다.

얼마 전 구의동에서 있었던 행복주택 공청회에 함께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위트와 재치로 내내 즐거웠던 표류미님의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후반의 경쟁에 지친 청년빈곤층 표류미입니다.

 

시작이 강렬하네요. 그렇게 소개한 이유가 있다면요?

저는 취업을 굉장히 빨리 한 편이에요. 고등학교 실업계 나오고 바로 취업해서 돈모아서 야간 대학 나오고 하면서 사회생활 경험이 한 8년 되는데 그 시기를 거치면서 회사안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겪었고, 또래의 대학 다니는 친구들은 토스니 뭐니하는 스펙으로 엄청 고생하는 것도 많이 봤어요. 근데 제가 처음 취직할 때가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마지노선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밑에 후배들 보니까 그 때부턴 다 계약직이에요. 저도 20대 중반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롭게 취업하는 과정에서도 아, 취업이 엄청 어려운거구나 하고 1년동안 방황했구요. 지금도 저 학원 3개 다녀요. 오전에는 바리스타랑 컴퓨터를 국가보조 이용해서 배우고 있고, 저녁엔 영어학원.. 대충 사는게 정말 너무 꿈인데(웃음) 그렇게 안하면 살수가없으니까. 너무 지치는데 지쳐도 나만 혼자 안 할 수가 없다 이런거죠.

 

그럼 실례지만, 전에 다니던 곳은 왜 그만뒀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일단 그 회사 자체가 '젊은 여자'가 거기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여자는 회사의 꽃이니까 그냥 남자들을 보조해주면 된다고 말하고, 그래도 그 회사 부서에서 특수한 업무로 5-6년을 일했는데 ‘제 생각엔 이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 반응도 없고, 선배 언니들도 애낳고 돌아오니까 책상 다 없어지고. 그런 걸 내 눈으로 보면서, 솔직히 돈은 고졸 출신의 그 나이대 여자들보다 많이 받았었지만 ‘내가 미래가 있나?’ ‘내가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1년에 4-5명씩 그만뒀어요. 근데 사람을 더 안뽑고 그만 둔 사람들 일을 저한테 다 맡겨버리니까..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니가 배운 전문적인 지식이 뭐가있어? 그냥 있어' 그러시길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하고 그냥 사표 그대로 쓰고 나왔어요. 그 후에 다녔던 몇 군데 회사도 다 비슷했어요.

  

어릴 때 주변에서 친구네 집이 사업하다 한 번 망하면 다시 일어날 기회가 없고 이런걸 보면서는 그냥 그렇구나하고 자랐어요. 근데 이제 내가 나이들고 취업하면서 8-9년 정도 지나니까 이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되게 열심히 사는데, 왜 나아지는게 없지? 이상하다. 뭐가 문제지, 스펙이 문젠가..’ 그랬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구조가 문젠거에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조금씩 세상 일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뭔가 이상하구나. 내 잘못이, 우리 잘못이 아닌 것 같다'하고. 세상이 내뜻대로 되지않는다는 건 알지만, 이건 좀 심하지않나?(웃음)

 

하하 그러게요. 정말 공감이 가네요. 집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요? 류미님은 원래 집이 서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원래 서울에 살았어요. 지금은 부모님 집에 사는데 독립을 하고 싶어도, 내가 지금 그냥 숨만 쉬고 사는대도 돈이 이만큼 드는데 집세까지 생각하면 너무 크게 부담이 되서.. 월세가 요새 40-50은 기본이잖아요. 지금 취업을 해서 정규직으로 가도 중소기업은 세전 160, 세후 150 정도에요. 근데 그렇게 했을 때 월세 나가고, 공과금 나가고, 세금 이래저래 나가고 하루에 계란 세알을 먹더라도 밥값도 나가고. 그래도 또 나중을 생각해서 저축도 해야하고. 그러면 생활이 되나 싶은거죠. 엄마도 말리세요. 나가면 돈 못 모은다고. 그렇게 20대 후반이 되다보니까, 내가 어렸을 때 생각하던 나의 29살때와 지금이 너무 다른거죠. 내가 19살 때 생각했던 29살의 나는 차가 있을 줄 알았어. 지금 차고 나발이고 자전거도 없단 말이야.(웃음) 생활 전반에서 '집에서 밥먹고 나가면 단돈 5천원이라도 아끼는데' 이런 식의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이 되게 사소한 것 같은데 사실 생활의 큰 부분인 것 같아요.

진짜 커요. 심리적인 여유라던가 여러 가지로.. 돈쓰기 싫으니까 왠만하면 그냥 카드쓰지 현금 안가지고 다니는데 가끔 너무 슬플 때가 있어요. 길에서 떡볶이 먹고싶은데 현금이 없는거야. 백수일 땐 그게 너-무 슬픈거야. 내가 지금까지 쉴틈없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돈 하나가 그렇게 아까운 느낌이 들 때.

 

그럼 이제 학원 3개를 다니면서 또 뭔가를 준비하는 중인건가요? 친구들이 많이 준비하고 있다는 이민이든 또다시 취업하는 것이든.. 이런 말하기 참 어렵지만 여유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근데 또 수입이 없는 상태가 부담스럽겠다 싶기도 하구요.이민도 말이 쉽지, 가면 외국인 노동자잖아요. 가는 게 파라다이스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있고, 그렇게까지 순진하진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과 동시에 이민도 생각하는 건, ‘난 반드시 가겠어!’가 아니라 ‘그런 길도 있을 수 있겠다..’ 이런 것. 여러 가지로 생각해야하겠다..

 

그러던 중에 청년의회를 접하게 된건가요?

그쵸. 청년의회를 한다는 공고를 봤을 때가 마침 바로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에 여행갔다가 '난 나이가 많아서 안돼'라는 생각이 외국인 친구에게 무참히 깨지고 난 후라, 이건 참여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하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렸을 땐 정말 일만 했거든요. 집-회사-집-회사. (부자가 됐어야 하는데 난 왜 부자가 안됐죠? 슬프다(웃음))

 근데 청년의회를 하다보니 되게 놀랐어요.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거나 어린 사람들도 많은데 되게 다들 생각하는 것도 많고 자기 주관이 있고 말하는 게 조리있고.. 요새 건국 이후 최고 스펙이라고 하는데, 진짜 똑똑한 세대인거 같아요.(웃음) 그래서 우린 이미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랬어요.

 

류미님의 경우에는 민달팽이유니온이나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뭐였나요?

사실 처음 청년의회를 할 때만 해도 주거문제에 대해서 '이게 진짜 내 문제다'라고 와닿지는 않았던 게, 저는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있고. 또 누구나 그런 착각을 하듯이 부모님이 언제나 내 곁에 계실거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 집에 얹혀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 그런 어린애같은 마음이 사실 아직까지도 있었어요. 근데 집이라는 게 내가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는(buying) 것이 되어버리면 얼마나 큰 비극이 되는지에 대해서, '미야베 미유키'라는 되게 좋아하는 일본 작가분의 ‘이유’라는 작품을 보면서 생각하게 됐어요. 이 소설 배경이 일본의 버블 경제가 다 빠지는 80년대 말-90년대 초거든요. 그걸 보고 '우리나라가 조금씩 이렇게 되겠구나', '빚을 내서 집을 샀는데, 버블경제 다 빠지고 사람들은 그 빚을 갚은 돈이 없고 집 경매로 다 넘어가고 그러면서 가정이 무너지고 마을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그럴 수 있겠구나', '남의 나라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아 우리집도 빨리 집을 사야하긴 할텐데..대출내서 집사면 이렇게 안되리란 보장이 있을까?' 싶은 거죠. 그때부터 '이게 나와 떨어진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건 있었어요. 


최근에 좀 정리한 생각은 '어쨌든 제일 중요한 건 이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라는 것. 하나의 비영리 조직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결국 모두가 이게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하는 거죠. 개인이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는거 같은데, 그런 개인 개인이 모여서 관심을 가지고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수면위로 떠오르고.. 그러다보면 결국엔 나도 언젠가 부모님께 부담을 덜 드리면서 내 힘으로 서는 독립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요샌 독립을 한다는 게 어른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이구나 하는 걸 되게 많이 느껴요. 회사 일로 잠깐 평택 쪽에 집을 얻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느낌이 '이제 나는 되게 많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어른이 되었다'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신감이나 자존감 같은 것들도 더 생기고 그랬거든요. 그런 독립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들이 진짜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

 

류미님 최근에 구의동 행복주택 공청회에 다녀왔는데, 어떻게 같이 가게 되었나요?

청년의회의 '걱정없길바람' 분과 카톡방에 올라온 걸 봤고, 궁금했어요. 사실 아직까지도 행복주택에 관해서 자세히는 몰라요. 근데 '어떤 말이 오갈까?' '어떤 말과 논리로 반대를 할까?'가 사실 제일 궁금해서 가봤어요. 나는 한번도 집주인이 돼본 적이 없잖아. 내가 가지고 있는건 몸뚱아리 하난데. 청춘. 젊음. 그것도 그나마 깎여가고 있는.(웃음)


공청회는 '마이리틀 행복주택'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본 장면들은 어땠나요?일단 초반에 시작할 때부터, (이게 작년에 기숙사가 진행되다가 무산이 된거라고 하더라구요.) '이미 무산됐고 안한다고 한건데 지금 행복주택이라니 설명회고 뭐고 다 필요없다. 듣지도 않겠다' 이런 분위기였어요. 프레젠테이션을 하려고 스크린을 내렸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가 이렇게하면 못하는거 아냐?’하면서 스크린 가리고.. 그래도 어떻게 끝까지 진행은 했는데 마지막에 질의응답에서 '진짜 솔직하게 인센티브 줘라. 막말로, 여기 세울거니까 너네가 참아라 하는건 말이 안된다. 세상만사 다 비즈니스 아니냐. 건물 증축을 허가하든 뭘 해라’ 하시더라구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증축을 하면, 집주인은 좋겠지? 근데 모두 그 집에 살제로 살고있진 않을 거 아냐. 거기도 결국 세줘서 다른 사람들이 세들어 살텐데 증축하면 또 주거비만 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기도하고..


근데 거기서 어르신들이 당신의 논리를 보충하고자 하는 곁가지의 말들이 슬펐던게, ‘젊은 애들 들어오면 술먹고 다 난리칠 거 아냐?’라는데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청년이 저런건가 딱 저렇구나 싶더라구요. 그리고 임경지 위원장님이 일어나서 말하려고 하는데 제일 먼저 나온게 일단 ‘이 마을 사람이 아니면 나가라’랑, 그 다음이 ‘어린 게 어르신들 이야기하는데 눈 똑바로 뜨고 대든다’는 거. 황망하다는 기분이 뭔지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그 분을 멍하니 보니까 저를 딱 보더니 ‘뭘 쳐다봐’ 하시고 시선을 피하시는데, 그 눈빛이 당신들께서도 이게 논리가 안되는 걸 아는거야. 감정적인 대처란 걸 너무 잘 아는거죠. 근데 그게 너무 슬픈거에요. 무엇이 이걸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어서. 거기 구의원도 나와서 '그렇게 좁은 공간을 집이라고 만들어놓고 젊은이들을 거기에 살라고 하는건 젊은이들에게도 좋지 않다'라고 하고, 그 말에 사람들이 동의를 하고 있는 걸 보고서 '아 정말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구나' 싶고.. 


또 다른 감정으로는, 거기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약간 미안하기도 했어요. 저도 행복주택이란게 만들어지면 들어가고 싶은 사람 중의 하나잖아요. 근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 '누군가는 이렇게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듣고 싸우기도 하고, 피피티를 만들고, 욕먹고 했구나', '이렇게 이루어지는 실상을 잘 몰랐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미안하기도하고 복합적인 그런 느낌? 


류미님처럼 그런 저희의 활동을 지지해주는 회원님들이 있기에 민달팽이유니온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걸요. 언제나 그렇지만 그래도 최근에 유독 그런 장면들을 맞닥뜨리는 것 같아요. 행복주택 공청회에 다녀온 몇몇 사람들에게도 감상을 들었는데, 다 비슷하게 '슬펐다'는 의견이 제일 많더라구요.

행복주택 끝나고 정리하고 밥먹으러 가는데, 집에 오는 길이 멀어서 먼저 나선 것도 있지만 거기 계속 있으면 너무 눈물이 날 것 같은거에요. 근데 그 자리에서 그동안 많은 걸 보고 경험해온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고작 하루 잠깐 갔다온 걸로 우는게 너무 실례인 것 같은거야. 그래서 먼저 나왔는데 그대로는 집에 못가겠어서 신촌에 내려서 잠깐 맥주한잔 하면서 친구랑 이야기했어요. 간 김에 그 친구한테 나중에 행복주택이나 9월에 2차 모집한다는 희망두배통장 꼭 지원해보라고 알려도 주고..(웃음)

 

행복주택이나 희망두배통장처럼, 실제로 우리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시민사회 영역에서, 거버넌스에서 우리 목소리를 낸 것들이 실제로 필요한 친구들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쓰인다니.. 우리가 진짜 뭘 해나가고 있구나 싶어 다행이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또다시 화이팅을 다지게도 되고 그렇네요. 이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저는 11월 초에 일본 열흘정도 갔다올거에요. 전에 간 독일 여행에서 일본애들이랑 친해져서, 그 친구들도 좀 보고.. 돈도 없고해서 카우치 서핑을 하려고 하는데, 이왕이면 내 또래 애들을 찾아서 물어보고 싶어요. 일본의 청년도 지금 사토리 세대라고 하잖아요. 일본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어떤 직업을 가졌길래 이 너의 개인공간이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웃음) 알아보고 싶네요.


민달팽이유니온의 새식구가 되었는데, 기분이 어때요?

시민단체에 회원이 된 건 처음이에요. 재단 같은 곳에 후원해본건 있어도.. 기분이 묘하네요!

친구들끼리 만나서 요새 하는 흙수저 금수저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는 그냥 편의점에 가면 매대 한쪽 구석에 대충 모아져 있는 일회용 수저’야 그러더라구요. 사회와 기업이 한 번 떠먹고 버리는 일회용 수저. 친구들도 대부분 이 사회와 회사에서 나를 배려하고 나를 구성원으로 인정해준다는 느낌 자체를 잘 못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다들 혼자 있는 것 같은거야. 동료가 없는 느낌. 그럼 다들 '우리 힘내자 힘내자' 하는데, 물론 열정이 있고 목표가 있고 그렇더라도 사람한테는 정신력이나 인내는 분명 한계가 있잖아요. 그럴 때, 소속감이나 인정받는 느낌이라던가, 나아질 수 있다는 ‘눈에 보이는’ 희망이 있어야한다고 봐요. 그걸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조금이라도 보아서 새롭게 함께하게 된 것이구요.





소중한 말이네요. 앞으로도 민달팽이유니온과 류미님이 서로에게 좋은 동료가 되고, 서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민유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음.. '앞으로도 같이 살자'구요. 우리는 그걸 계속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말이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들도 행복해야한다'에요. 학교다니면서 가정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많이 본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 때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주는것이나 개인의 무력함도 알았고.. 그때부터 '단체 같은 게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같이 살자는 마음을 가진 단체라면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거 같아요.


아유. 좀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더 많이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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