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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7 고충처리위원회 피해자 입장문

2018-04-05
조회수 1008

민달팽이유니온·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사무국(이하 사무국)에서 회원·조합원분들께 공유드립니다.

사무국에서는 지난 3월 26일, 2017 '직장 내 괴롭힘_평등문화 침해사건'의 고충처리위원회 후속조치로서의 가해자 사과문과 상근집행부 입장문을 공유드린 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피해자의 입장문을 4월 4일에 받아 공유드립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피해자 입장문]


미투 지지 선언을 한 명사들이 알고보니 미투 가해자로 드러나는 뉴스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됩니다. 어떤 가치를 지지하고 선언하며 사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 사이에는 큰 강이 하나 껴 있나 봅니다. 전 위원장을 비롯한 민달팽이 또한 그런 류의 강을 미처 다 건너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간혹 민달팽이 블로그에서 전 위원장이 임기 동안 해왔던 인터뷰나 논설 등을 읽게 될 때마다 느꼈던 괴리감을 기억합니다. 누군가의 인권이나 상호 존중이나 민주주의 또는 페미니즘 같은 것들을 말하던 그의 흔적들이 전부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말의 대상에 왜 그 자신과 우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던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사정 하나쯤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폭력을 합리화해줄 순 없습니다. 인신공격이나 태움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은 그 자체로 단속하고 징벌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논의에 앞서, 여러 대화/조정의 과정이 짧지 않은 기간동안 수 차례 있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도 힘들었고, 나는 선의로 시작했고, 나도 사실 피해입은 게 있고, 라는 입장은 2년 가까운 시간동안 피해자들에게 계속해서 유의미한 말은 아닙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어떤 사람을 애정하고 위하면 그의 잘못을 삭제시켜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누구도 피해자를 대신하여 용서할 자격은 없습니다. 민달팽이 조직의 역사나 한국 사회 구조 등 범위를 넓게 보면 가해자도 피해자가 맞습니다. 그렇다고 그것과 조직 내부에서의 가해 사실이 서로 상쇄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명의 경험자가 발생한 일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유사한 피해를 호소할 때마다 걔도 노력하고 있어, 변하고 있어, 이러저러할 때는 안그런데, 너무 일 키우지말고, 같은 말들이 반복됐습니다. 피해당사자도 시기도 달라졌지만 듣는 말은 똑같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본인이 예민하고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탓하기 마련이었습니다.

편가른다, 나댄다, 배후세력이다 같은 뒷말이 붙게 됐던 구성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이 사안에 대해 피해자중심의 의견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얻은 오명이라기엔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후회한다, 라는 말이 가장 절망스러웠습니다. 자신이 입장을 표현했던 것을, 나아가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에 책임을 느낍니다. 가해 인정이나 사과의 과정이 이렇게 지난해질 줄 몰랐다는 저의 하찮은 말로는 그 누구에게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더욱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한 행위 같은 건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비공개가 우선시 되지만, 누군가가 오명을 뒤집어 쓰거나 새로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공공연하게 벌어져 왔습니다. 악습은 관성처럼 남아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가 봅니다. 버티는 것은 또다시 남은 사람의 몫이 됩니다. 떠난 사람이지만 염치없게도 그것이 죄스럽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뻔한 상황들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예상 밖의 일들이었습니다. 뻔하다는 점에서는, 이 사안이 한국 사회에서 특히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종류의 가해임을 참작해보면 그렇습니다. 사회 운동을 하는 청년 단체라고한들 운동권 문화 또는 한국의 흔한 조직 문화가 갖는 한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받아 들이면 더 그렇습니다.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조직 운영은 잘못이라기보단 스탠다드인 경우가 더 많은 만큼 말입니다. 이 때 운동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생긴다는 점은 감안할 부분이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사안을 공론화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운이 좋은 일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첫 징계위가 있던 2년 전 여름부터, 그 다음 해 제가 문제제기를 했던 1년 전 여름과, 그리고 온갖 상황들이 뒤섞이던 지난 가을 겨울과 이번 봄까지. 긴 시간 끝에 이 입장문으로 이 사안이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사과와 용서에는 적절한 때가 있고, 이를 원활하게 했을 대화 또한 소위 골든타임이 있었을 겁니다. 그것들을 시도 했다가 멸시당했던 순간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과를 주고 받고 용서를 논하며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기에는 그것들의 양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화를 기대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기다림 동안 피해자들은 상황마다 방관자도 되고, 피해자도 됐습니다. 그러다 얻은 것은 오해뿐이었습니다. 피해가 아닌 피해코스프레가 되고, 그런 대우를 받을만했던 사람이 되고, 했던 말은 없던 말이 되고, 한 적 없는 말은 했던 말이 되고, 함께 상황을 해결해나가자는 호의인 줄 알았지만 결국 뒷담 소재로 쓰이기만 하는 상황을 수 차례 경험했습니다. 전 위원장과의 불통 외에도, 전 사무처장의 정치적 시기별 입장 변경 및 일방적 소통, 피해자들 및 상근자간의 교류 부족, 주요 관계자들의 비공식적인 회유 및 관계 단절 등은 문제제기 발언을 했던 당사자 본인의 고립감을 더 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고충위 운영과 일반 회원/조합원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과정에서 조직의 주요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퇴사를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위원장은 위원장의 역할을, 사무처장은 사무처장의 역할을, 저는 저의 역할을 충실히 했어야 했습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서 밖에서 열성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헛헛한 것이었어서, 결국 이런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위원장과 사무처장과 저는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했을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민달팽이유니온 7기 사무국에 속했던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민달팽이 구성원들에게 사과드립니다. 민유7기에서의 미흡함이 8기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또 한 번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줘야 했을 7기 사무국의 일원으로써, 그러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과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사안들의 가장 마지막 과정으로 제가 입장문을 내는 것이 못내 부담스러웠습니다. 피해가 여전히 추스러지지 않은 점, 그래서 나중에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수준의 생각들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쓰게 될 것 같은 점, 나보다 더 피해 입은 사람이 아닌 내가 마지막까지 나대는.. 점, 이미 새 시작을 한지 한참 된 위원장이나 구성원들에게 과거의 사람이 나타나 굳이 한 번 더 부정적인 말을 보태는 모양새, 상근자 입장문이 올라간 후 내 글이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점 등이 마음에 부대꼈습니다. 나중에 보면 다 별 거 아니라는 어떤 어른의 말도 아른거립니다. 이런 글이 아닌 더 나은 마무리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주어진 일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일인 것 같아 거친 말이나마 이렇게 전합니다.

민달팽이를 떠나 어느 곳에서 새로운 성장을 해나가고 있을 전 위원장과 전 사무처장에게도, 저보다 더 깊고 긴 치유의 과정을 갖게 될 또 다른 피해자분들에게도, 이 일들에 오랜 시간 마음을 보탰던 많은 구성원들께도 저 때문에 하셨을 고생에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 모두 실수와 성찰과 성숙을 반복하는 미미한 개인 하나에 불과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 스스로는 과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어느 적절한 순간에는 자신을 용서하고 북돋아 그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저도 어디서 들었던 말에 적극 동의하며 위원장과 전 사무처장을 비롯한 다른 상근자들께 전해봅니다. 이 과정을 곁에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잘 해내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낯설고 평탄하지 않았던 이 과정들을 함께 지나온, 민달팽이의 다음을 만들어갈 구성원들에게 그리움과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문제적 상황들을 딛고, 이전과는 다른 걸음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구성원들이 서로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부러운 일입니다. 그동안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고 지난한 일이겠지만, 서로가 외롭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2018.4.3.
민달팽이유니온7기 기획국장 김솔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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