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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수첩] 어제의 활동가

2019-04-17
조회수 321

*코너설명) 상근수첩은 단체 상근자들의 단상을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2019.04.12. 상근수첩 <어제의 활동가>

김경서(얄리)


   4월 11일 어제, 66년만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왔다. 정책 관련 회의를 하던 중이었고 3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처음 확인했던 기사는 KBS 발이었다. 수많은 얼굴과 장면이 스쳐지나갔고 얼굴에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누구도 ‘그런’ 수술대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길이 이제야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이것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차가운 수술도구, 서류, 경찰서, 전화, 전화, 전화, 수술대, 피, 약, 우울증, 불안, 우리가 보거나 듣거나 경험해야 했던 그것들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여성의 몸이 어떻게 국가에 의해 도구화되는가’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서술이며 공통된 감각이다. 인간인데 도구로 기능해야 했다. 거기에서 발생한 깊은 불일치가 우리의 삶을 직조했다. 그 모든 지난함이 한순간 눈물로 밀려나왔다.

   동시에 나는 안국역에서 기쁨으로 울고 있을 활동가들을 생각했다. 활동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잃는 것은 건강이요, 남는 것은 죄책감이다. 대부분의 경우 임금은 적고 노동시간은 길며 업무는 산만하다. 팥이 주어져도 메주를 생산해내는 일, 때로 운동은 그런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 앞에 산적한 숙제는 끝나지 않을 무언가이고 때로 대치되는 무언가이고 그래서 수없이 무너진다. 그렇게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게 혼자서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승리의 경험은 더욱 특별하다.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물처럼 연결된 사람들 모두의 것이기에. 활동영역이 다르고 서로 다른 실무를 수행해도 모든 운동은 결국 서로에 관한 운동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경우 당신의 운동은 나의 운동이 되고 나의 운동은 당신의 운동이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운동만이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안국역의 활동가들을 생각하며 회의 자료를 찾던 중, 하나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독일의 임대료 시위에 관한 이코노미스트 기사였다. 알렉산더 플라츠 광장에 4만 명의 시민이 모여 민간 부동산 회사를 몰수해야 한다고 외쳤단다. 시장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선명한 말을 4만명이 모여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그것이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집회였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이런 대중운동의 장을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을지 1개의 내부회의, 2개의 외부회의를 뛰는 내내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이런 운동의 흐름을 포착해낼 수 있을까....', '테니스 연습장 자동 발사기의 공처럼 쏟아지는 일 사이에서 이런 기획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등의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단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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