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 주거지원 매뉴얼을 펴내며
2018년 방한했던 레일라니 파르하 UN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제40차 UN인권이사회에서 한국의 주거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소수자가 처한 주거권 문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 커플은 배우자가 사망하면 임차권에 대한 승계권을 가질 수 없고, 트랜스젠더는 법적 성별 불일치로 인해 주택 임차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지정성별로 분리된 쉼터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홈리스가 될 위험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는 그동안 잘 얘기되지 못했던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을 언급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지만 단편적인 사례만 말하고 있어 이들이 겪는 주거 불안의 다층적인 양상과 맥락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논의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본 단체(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가 2020년부터 2021년 봄까지 성소수자가 어떤 주거 불안을 겪고 있는지, 이 주거 불안의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수의 성소수자들은 이성애 규범 중심의 사회관계, 성별이분법 공간 체계, 그리고 정상가족 중심으로 이뤄진 주거정책으로 인해 주거권을 침해받고 있었습니다.
먼저 성소수자들은 이성애 규범 중심의 사회관계에서 아웃팅 위험에 시달리며 주거 불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거 불안은 원가족 집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데, 많은 성소수자에게 원가족 집은 따뜻함과 애정을 나누는 공간이기 전에 그들의 정체성을 숨겨야만 하는 공간으로서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경험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언제든지 부모와 형제들에게 밝혀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자신의 행동을 단속해야 하는, 어찌 보면 항상 불안과 긴장의 장소로 원가족 집을 경험하게 합니다. 물론 이 주거 불안은 원가족 부모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이들을 둘러싼 이웃 관계는 원가족 집에서와 같이 계속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단속해야 하는 불안과 긴장을 심어놓기 때문이지요.
또한 성소수자들은 기숙사, 고시원, 쉼터 등 성별이분법으로 운영되는 다중 주거시설에 거주할 기회가 제한되며 주거 위기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 주거 불안은 트랜스젠더가 많이 겪습니다. 많은 수의 트랜스젠더들이 법적 성별과 현재 자신이 인지하고 표현하는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남/여 이분법 공간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별정체성 문제로 탈가정을 해야만 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청소년 쉼터나 고시원과 같은 공간이 선택지에서 제외되며 주거 위기에 처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커플의 경우 정상가족과 혈연 중심으로 구성된 주거정책에서 배제되며 주거의 이동 기회를 박탈당하고 주거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듯이 국내 주거정책은 인구 재생산을 위해 정상가족 중심으로 이뤄져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포함될 수 없는 성소수자 가구, 비혼 가구와 장애인 가구 등은 당연히 주거정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안정적인 주거에 관한 전망을 어둡게 하며 불안을 야기합니다.
이처럼 성소수자들은 많은 영역에서 다층적으로 주거 불안을 겪고 있지만 이 문제들이 성소수자 인권 운동 내에 주요한 의제로 문제화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집’을 사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는 불안정한 주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자원을 동원해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집은 사는 곳이 아닌 투기의 공간이라 말하며 사적인 재산으로서 집을 강조합니다. 이 상황에서 성소수자의 주거권을 말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소수자 주거권을 공론화하기 위해 만난 성소수자 단체들도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여태까지 자신들이 경험한 주거 불안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차별과 권리의 문제로 확장하기 힘들었다고 말이죠.
집은 사적인 것과 더불어 공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1991년에 발표된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 일반논평 4호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에 따르면,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며, “연령, 경제적 지위, 집단 또는 기타 다른 이와의 관계 또는 신분 및 기타 요인 등과 관계없이 적절한 주거권을 누릴 권한”이 있고, 특히 “적절한 주거권의 향유는 어떤 형태의 차별의 대상도 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주거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공적인 자원이고, 동시에 시민들이 요구해야 하는 집합적 권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거권은 국가가 가장 기본적으로 챙기고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대표적인 인권입니다. 그래서 이 매뉴얼은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가시화되지 못했던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을 공론화하며, 이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첫 시도기 때문입니다.
매뉴얼은 성소수자들이 처하고 있는 다양한 주거 불안의 내용을 유형화하고, 이에 따른 대응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주거상담센터들이 성소수자들이 처한 주거 불안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와 상담 요령, 그리고 지원 방안 등을 제시했습니다. 첫 시도이기 때문에 아직은 매뉴얼의 내용이 어설프지만 그래도 주거복지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또한 그동안 주거복지 현장에서 표상되지 못했던 성소수자들이 이 매뉴얼을 계기로 적절한 주거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주거 불안은 이성애 규범과 성별이분법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주거 정책 등 구조적 차원의 영향이 큽니다. 따라서 성소수자의 주거권을 얘기하는 것은 단지 안정적인 거처를 논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기존 질서를 극복하는 시도고, 새로운 것을 상상하며 요구하는 실천일 수 있습니다. 모쪼록 이 매뉴얼이 성소수자의 주거권이라는 함성의 첫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는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주거 불안을 공론화하고 이들의 주거권을 옹호하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성소수자들이 처한 주거 불안의 맥락과 경로 등을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주거권 운동 단체와 함께 성소수자 주거권 운동을 엮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는 ‘민달팽이유니온’,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주거지원 매뉴얼을 펴내며
2018년 방한했던 레일라니 파르하 UN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제40차 UN인권이사회에서 한국의 주거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소수자가 처한 주거권 문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 커플은 배우자가 사망하면 임차권에 대한 승계권을 가질 수 없고, 트랜스젠더는 법적 성별 불일치로 인해 주택 임차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지정성별로 분리된 쉼터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홈리스가 될 위험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는 그동안 잘 얘기되지 못했던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을 언급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지만 단편적인 사례만 말하고 있어 이들이 겪는 주거 불안의 다층적인 양상과 맥락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논의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본 단체(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가 2020년부터 2021년 봄까지 성소수자가 어떤 주거 불안을 겪고 있는지, 이 주거 불안의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수의 성소수자들은 이성애 규범 중심의 사회관계, 성별이분법 공간 체계, 그리고 정상가족 중심으로 이뤄진 주거정책으로 인해 주거권을 침해받고 있었습니다.
먼저 성소수자들은 이성애 규범 중심의 사회관계에서 아웃팅 위험에 시달리며 주거 불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거 불안은 원가족 집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데, 많은 성소수자에게 원가족 집은 따뜻함과 애정을 나누는 공간이기 전에 그들의 정체성을 숨겨야만 하는 공간으로서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경험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언제든지 부모와 형제들에게 밝혀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자신의 행동을 단속해야 하는, 어찌 보면 항상 불안과 긴장의 장소로 원가족 집을 경험하게 합니다. 물론 이 주거 불안은 원가족 부모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이들을 둘러싼 이웃 관계는 원가족 집에서와 같이 계속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단속해야 하는 불안과 긴장을 심어놓기 때문이지요.
또한 성소수자들은 기숙사, 고시원, 쉼터 등 성별이분법으로 운영되는 다중 주거시설에 거주할 기회가 제한되며 주거 위기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 주거 불안은 트랜스젠더가 많이 겪습니다. 많은 수의 트랜스젠더들이 법적 성별과 현재 자신이 인지하고 표현하는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남/여 이분법 공간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별정체성 문제로 탈가정을 해야만 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청소년 쉼터나 고시원과 같은 공간이 선택지에서 제외되며 주거 위기에 처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커플의 경우 정상가족과 혈연 중심으로 구성된 주거정책에서 배제되며 주거의 이동 기회를 박탈당하고 주거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듯이 국내 주거정책은 인구 재생산을 위해 정상가족 중심으로 이뤄져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포함될 수 없는 성소수자 가구, 비혼 가구와 장애인 가구 등은 당연히 주거정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안정적인 주거에 관한 전망을 어둡게 하며 불안을 야기합니다.
이처럼 성소수자들은 많은 영역에서 다층적으로 주거 불안을 겪고 있지만 이 문제들이 성소수자 인권 운동 내에 주요한 의제로 문제화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집’을 사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는 불안정한 주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자원을 동원해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집은 사는 곳이 아닌 투기의 공간이라 말하며 사적인 재산으로서 집을 강조합니다. 이 상황에서 성소수자의 주거권을 말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소수자 주거권을 공론화하기 위해 만난 성소수자 단체들도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여태까지 자신들이 경험한 주거 불안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차별과 권리의 문제로 확장하기 힘들었다고 말이죠.
집은 사적인 것과 더불어 공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1991년에 발표된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 일반논평 4호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에 따르면,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며, “연령, 경제적 지위, 집단 또는 기타 다른 이와의 관계 또는 신분 및 기타 요인 등과 관계없이 적절한 주거권을 누릴 권한”이 있고, 특히 “적절한 주거권의 향유는 어떤 형태의 차별의 대상도 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주거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공적인 자원이고, 동시에 시민들이 요구해야 하는 집합적 권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거권은 국가가 가장 기본적으로 챙기고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대표적인 인권입니다. 그래서 이 매뉴얼은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가시화되지 못했던 성소수자의 주거 불안을 공론화하며, 이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첫 시도기 때문입니다.
매뉴얼은 성소수자들이 처하고 있는 다양한 주거 불안의 내용을 유형화하고, 이에 따른 대응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주거상담센터들이 성소수자들이 처한 주거 불안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와 상담 요령, 그리고 지원 방안 등을 제시했습니다. 첫 시도이기 때문에 아직은 매뉴얼의 내용이 어설프지만 그래도 주거복지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또한 그동안 주거복지 현장에서 표상되지 못했던 성소수자들이 이 매뉴얼을 계기로 적절한 주거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주거 불안은 이성애 규범과 성별이분법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주거 정책 등 구조적 차원의 영향이 큽니다. 따라서 성소수자의 주거권을 얘기하는 것은 단지 안정적인 거처를 논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기존 질서를 극복하는 시도고, 새로운 것을 상상하며 요구하는 실천일 수 있습니다. 모쪼록 이 매뉴얼이 성소수자의 주거권이라는 함성의 첫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는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주거 불안을 공론화하고 이들의 주거권을 옹호하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성소수자들이 처한 주거 불안의 맥락과 경로 등을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주거권 운동 단체와 함께 성소수자 주거권 운동을 엮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는 ‘민달팽이유니온’,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이 함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