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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민달팽이가 바라본 LH 투기 사건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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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민달팽이가 바라본 LH 투기 사건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LH 투기 사건을 해석하기 위해 어떤 청년이 호명되는가

불평등의 수준이 남다른 시대다. 기존의 사고방식만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불평등들이 복합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비슷한 나이, 비슷한 역사적 사건을 겪었다고 해서 이것이 더 이상 우리에게 일관되고 필연적인 연대감을 주는 계기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LH 투기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 사회가 가장 오랫동안 방치해왔던 고질적인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고, 다양한 비판들이 이뤄졌지만 청년세대 안에서도 그 비판지점은 사뭇 달랐다.

청년A는 ‘LH’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일종의 자격을 획득한 것이라 주장했다. 자기 능력으로 따낸 직업이고 지위이니, 그 지위에서 알게 된 미공개정보를 이용하고 대규모 대출을 통해 투기할 수 있는 것은 소위 ‘복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청년B는 LH‘만’ 투기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청년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둥 부동산의 큰 손이 되었다는 둥 영끌하는 청년을 호명하는 맥락과 닿아 있으며, 부동산시장의 질서가 모두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허황된 전제에서 시작하는 주장이다. 공정한 부동산시장 안에서 일련의 룰을 통해 영혼을 끌어 모아 대출을 하고, 빚을 져서 집을 사고, 집값이 잘 오르는 집을 고르는 눈을 키우기 위해 몇 백 만원에 달하는 강의도 듣는 와중에 감히 그 공정한 룰을 깨고 자기들끼리만 그런 정보를 알고 있었다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었고, 이것은 나도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사 표현이기도 했다.

실제로 다수 언론과 정치계가 집중했던 키워드는 청년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공정’과 이 사건에 대한 ‘박탈감’이었다. 부동산투기만이 유일한 자산증식수단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 기회마저도 공정하지 않았고, 소위 그사세에 나는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에 민달팽이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LH를 비판하는 화살은 무엇을 타겟으로 삼고 있는가? 왜 특정 계층은 ‘청년’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투기할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가? 이로써 무엇이 가려지고, 무엇이 왜곡되는가? 무엇이 공정인가? 투기 권하는 사회는 잘못이 없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은 채로는 LH 조직개편이 진정 추구해야 하는 개혁을 이루기 어렵고, 투기근절의 필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금세 가려질 수밖에 없다.

 

청년을 팔아 불평등을 가리는 비겁함을 벗겨내야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

청년A와 B에게 청년을 바라볼 때 그의 연령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속한 계층이다. 영끌해서 집을 구매했다는 청년은 청년세대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호명되지만 그것은 절대 다수의 일이 아니다. 지난 해 동안 어떤 청년들은 원가족으로부터 3조원을 증여받고, 어떤 청년들은 최저시급으로 계산된 노동소득조차 제때 받지 못한 채 노동권 분쟁을 겪는다. 자산불평등이 극심한 시대, 청년세대 내 불평등 또한 자산 격차를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투기가 공정해야 한다는 시선은 그 자체로 기만이다. 이미 자산화된 주택에 대한 접근성이 점차 일부 계층에게만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산을 기준으로 특정 계층이 권력과 기회를 독점해온 구조를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가린 채 유독 그들에게 ‘청년’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구조적 불평등을 숨기는 비겁한 전략이 그대로 정부의 정책과 정치인들의 언어에 반영되는 것이 개탄스럽다.

LH의 조직 체계가 분리되면, 사회는 자산불평등을 완화하고, 다수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누구도 섣불리 답할 수 없다. 조직개편의 주요 목적에 주거권과 주거불평등에 대한 지향이 담겨져 있을지 의문스럽다.

현재의 청년세대는 자신이 귀속되었던 원가족의 자산을 보유 여부를 통해 인생 궤도가 결정되는 것에 강한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에 언론과 정치인이 가장 흔히 붙이는 이름표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라는 것이지만, 이 불안은 단순히 소유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넘어선다. 이것은 결국 현재의 구조 안에서는 자산보유자가 되지 못한 개인은 특정 계층과 영영 구분되는 정체성에 놓이고, 일방적인 권리 침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불안을 내재하고 있다. 자산 중심으로 사고하는 체계에서는, 그 자산을 소유하지 않은 채로 머물고 있는 사람, 즉 세입자를 영영 구별 짓게 된다. 세입자인 것이 곧 더 깊은 불평등한 상황이 방치되고 있음을 모두가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LH 투기 사건 이후 공공에서 움직이고 있는 방향은 시민 모두가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는 저 궁극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길을 향하고 있는가? 주거복지 부문과 토지주택부문을 수직적으로 분리하는 개편안이 실제로 시민 다수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고, 더 큰 불평등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LH를 비롯한 조직 내외의 결정권자들은 반드시 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자산불평등이라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더 큰 격차를 만드는 부동산투기를 근절하겠다는 것, 이미 불평등한 것은 효과적인 분배 정책을 통해 불평등의 정도를 완화해가겠다는 것, 투기수단을 넘어 사회안전망으로써 집이라는 공간이 보장될 수 있도록 주거권의 증진을 이뤄가겠다는 것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다.

 

‘주거권 보장, 주거불평등 완화’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조직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LH조직개편은 주거권 보장과 주거불평등 완화를 위해 누가 무엇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관리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넘어, 구조적으로 더 강화된 공공성을 실천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불평등을 직시하지 않고, 문제를 잘못 해석한 채로 조직개편을 논의해선 안된다.

 

의사결정구조 및 실행체계 안에 세입자 정체성을 가진 자들의 역할이 절실하다

진정한 개혁 의지를 낼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경험이 많거나, 특정 시험을 통과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있는가? 그랬다면 LH 투기 사건과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겠다. 조직구조를 개편하고, 수직구조를 만들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고민을 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누가 그 업무를 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재부는 왜 LH에게 충분한 재정보조를 결단하지 않았는지, 조직개편을 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불평등 문제에 대한 당사자성을 갖고 임할 수 있는 자들의 등장이 절실하다. 다주택자와 투기꾼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다수 시민이 겪는 주거불안이 최우선 해결과제로 여겨질 수 있는가? 그랬다면 투기근절에 대한 접근, 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시민에 대한 고민이 이 정도 수준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의 주거는 현재 수준의 주거복지체계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투기근절에 대한 의지가 또한 더 강력한 실천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산을 보유하고 이미 특정 궤도 위에 오른 계층이 아닌 자들의 현장과 시선이 담겨야 한다.

 

주거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LH 투기 사건은 몇 명이 일탈로써 그냥 벌린 일이 아니다. 주거를 권리가 아닌 능력으로 여기는 사고방식, 이미 획득한 자산을 기반으로 더 많은 투기를 통해 더 많은 토지와 주택을 과점하고자 하는 특정 계층사이의 강력한 연대, 집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을 진정한 성공이라 여기고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어딘가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상태라고 규정하는 시선 등이 총체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 안에서 유기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주거는 개인의 능력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LH 투기 사건에서 ‘LH’만 투기한 것이 문제라고 바라보거나, ‘투기’가 왜 문제냐고 주장하는 관점을 옹호하는 사회는 다수 시민의 주거 안정을 확보해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미 자산불평등이 극심한 시대임을 모두가 체감한다. 과거로부터 보유한 자산에 따라 인생의 다양한 기회와 시작이 달라진다고 느끼는 청년이 다수를 차지한다. 출발점이 공평하지 않은 여건을 가리거나 왜곡한 채로는 그 어떤 주거 정책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

민달팽이는 여전히 다양한 현장에서 우리에게 주거권이 어디있냐, 주거권은 없다, 세입자에게 권리가 어디있냐, 억울하면 집을 사라, 부모님집에 들어가서 살아라 등 라떼도 고시원에서 살아봤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 얼마짜리 집을 몇 개 가진 선량한 서민으로 살고 있는데 우는 소리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듣는다. 그는 왜 열악한 고시원에 살았는가? 그는 어떻게 현재의 집을 소유하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불로소득을 보장받고 있는가?

LH 투기 사건은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머지않은 때에 반드시 해체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주는 사건이다. 토지와 주택을 과점하고 있는 자산보유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주거안정은 어떤 차이를 갖는가? 청년 다수는 세입자로 살아간다. 자산을 지원받지 못하는 청년일수록 더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다. 살다보면 의문이 든다. 반지하는 왜 주거공간으로 인정되는가? 고시원에는 분명 사람이 살고 있는데 왜 최저주거기준을 적용받지 않는 준주택으로 분류하는가? 이 모든 것은, 네가 능력껏 그러한 임시거처에서 벗어나 더 좋은 집을 소유하게 되면 다- 벗어던질 수 있는 일이라 취급하는 사회와 공공의 시선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주거안정의 기회, 즉 주거권은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 점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자격을 주거나 박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달팽이에게는 여전히, 앞으로도, 보다 점유중립적인 주거정책이 필요하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어느 공간을 점유하고 있든 그 자체로 주거권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LH 등은 더 강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고,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과도한 이득을 취했던 것들은 다시 사회로 환원 및 분배되어야 하고, 도시가 누구에게나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포용적인 도시재생이 필요하며, 보다 다양한 불평등이 교차하고 있는 시대를 반영한 복합적인 주거복지체계가 절실하다. LH조직개편은 향후 한국의 주거 정책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공공은 더 큰 책임감을 갖고 토지와 주택이라는 중대한 주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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