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호명하는 시민은 누구인가
-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이슈에 부쳐
엇갈리는 평가와 실적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이하 청년주택) 첫 입주자 모집공고가 2019년 8월 29일 발표되었다. 청년주택의 취지는 자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청년층을 위해 역세권에 위치한 임대주택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급면적은 평균적으로 1인당 5평 정도이며 임대료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국민임대주택 수준이며 민간임대주택의 경우 시세의 85%에서 95% 사이에서 결정된다.
이처럼 좁은 면적과 높은 임대료로 인해 청년주택을 둘러싼 여론은 비판조를 이루었다. SNS는 청년주택이라는 키워드로 도배되었고 언론은 앞다투어 시민들의 반응을 보도했다. 그러나 세간의 반응과는 다르게 9월 20일 발표된 청약경쟁률은 최고 344:1까지 기록을 경신했다. 최악의 공공주택이라는 평가와 백단위의 경쟁률. 많은 사람들이 청년주택을 비판하였으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청년주택에 청약을 넣었던 것이다.
이 둘은 모순된 현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5평의 최저기준을 겨우 충족하는 주거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마저도 간절하다”는 하나의 절박한 이야기이다. 높은 청약율을 근거로 들어 청년주택 정책을 높이 평가한다면 이는 현상 뒤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불러내지 못한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을 모두 해석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왜 누군가에게는 고작 5평의 방이 그토록 절실했는가?”
한국도시연구소와 민달팽이유니온이 2014년 3월 발표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청년가구 36%가 주거빈곤상태에 처해있다. 또한 국토연구원에서 발표한 2018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를 비롯한 전체 가구의 자가점유율은 모두 상승한 반면, 청년가구의 그것만은 하락했다. 이처럼 청년층의 주거실태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러한 주거빈곤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공공임대주택이다.
그러나 한국은 공공임대주택 물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더러 선정 체계 또한 혈연 및 혼인 관계를 전제로 하는 정상가족의 틀에 갇혀 있다. 나이, 부양자 수, 지역 거주 기간, 청약 납입 횟수 등을 기준으로 두는 기존의 가점 체계는 청년들에게 또 다른 차별의 요소로 작용했다. 특정 틀에 갇혔다는 한계로 인해 공공임대주택은 주거빈곤을 해소하기보다는 1인 가구, 청년, 장애인, 이민자, 성소수자, 비혼 가구 등 사각지대로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넓은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정형화된 빈곤의 틀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은 아예 없다시피 한 정책이었고 그 와중에 청년주택은 동아줄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행복주택-청년주택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높은 경쟁률은 놀랍지 않은 결과이다.
행복주택에서부터 청년주택까지, 무엇이 문제인가?
한편,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을 보완하고 청년들을 위한 주택이라며 등장한 행복주택 역시 틀을 깨뜨리는 답이 되지 못했다. 2016년부터 공급되어 온 행복주택은 이전의 공공임대주택이 포섭하지 못했던 계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는 점과 비교적 지리적 위치가 좋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몇 가지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고 이 결함들은 청년주택으로까지 이어졌다.
첫 번째 결함은 1인 가구의 공간 형태를 원룸으로 제한했다는 점에 있다. 기존의 핵가족 체제가 붕괴되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1인 가구를 포섭하기 위해 정부는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불리는 원룸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원룸은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문제적이지만, 더욱 문제적인 지점은 주택공급정책이 청년을 비롯한 비혼 1인 가구를 임시적 존재로서 바라본다는 사실에 있다. 그 이면에는 청년을,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를 임시적인 상태로 인지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이는 신혼부부에게 공급하는 임대주택 물량의 비율을 보면 더욱 확실하게 증명된다.
실제로 청년주택은 신혼부부 주택 비율이 30% 이상이며 청년 1인 가구에게는 최저주거기준을 겨우 상회하는 5평의 공간을 공급한다. 식사, 공부, 수면을 5걸음 안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이 한 사람의 주거권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래 원룸이란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집어넣기 위해 고안된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가 선제적으로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는 공공기관의 실적과도 긴밀하게 연결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실제 삶은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다. 휠체어는 애초에 들어갈 수조차 없고, 손님을 초대할 수도 없다. 오로지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재생산만을 보장하는 임시 거처. 국가는 지금 1인 가구에게 그런 주택을 보급하고 있다.
두 번째 결함은 시세 기준 임대료의 도입이다. 시세라는 시장의 언어가 공적 영역으로 들어오자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급격하게 공공성을 잃으며 빈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공공임대주택은 소득 기준 임대료까지는 못하더라도, 당해 주택가격을 임대료 책정의 근거로 가져왔다. 반면 행복주택은 최근 1년간의 주변 시세 감정가를 기초자료로 사용한다. 이는 임대료를 상승시키는 동시에 수요자 계급의 변화를 불러왔다. 도심에 시세 60%의 집을 얻을 수 있는 건 분명 행운이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그 행운은 시세 60%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주택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공임대주택 물량은 시세의 30%로 저렴한 편이라고 해도, 그것은 전체 물량의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시세의 85%에서 95% 수준에 이른다. 이렇게 임대료가 높게 책정된 이유는, 행복주택이 토지매입에 대한 지출을 메꾸기 위해 시세기준 임대료를 들고 나왔던 것처럼, 청년주택 역시 재정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간 소유 토지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공공과 민간의 결탁
서울시 측에서는 이러한 정책구조를 두고 민간과 공공의 협력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결탁에 가깝다. 서울시는 적은 지출로 8만 호라는 공공임대주택 실적을 올리기 위해 민간에게 용적률을 완화하고 8년 이후의 분양 전환을 약속했다. 토지주들은 8년만 기다리면 분양 전환을 할 수 있고, 용적률이 완화된 역세권 지역에서 시세 차익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차액을 노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명백한 자본의 승리이다. 더 선명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부동산 시장 규제에 앞장서야 할 공공이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부동산 업자들의 배를 불려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역세권 2030은 수익을 보장받고자 하는 민간과 재정을 지출하지 않고자 하는 지자체 및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정책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이해관계가 곧 정책 대상을 감싸안는 데 한계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공기관의 지출을 보호하고 민간사업자의 손을 빌리는 식의 공급 정책을 유지한다면 임대료는 일정 정도 이하로는 낮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빈곤한 이들에게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국가가 지출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주택의 임대료를 올린다면, 그래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계급의 사람들만 들어간다면, 그 공공주택의 존재 의의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공공임대주택의 대상이 되어야 할 청년은 보증금으로 9천만 원을 낼 수 있는 청년이 아니다.
정상성과 자본 사이에 버려진 사람들
이처럼 공공임대주택 전반의 기조는 과도하게 시장논리에 기초하고 있으며 차별적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확충하기 위한 복지 지출을 손해로 규정하고, 정상성에 편입하지 않는 이들의 주거권은 보장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미처 글에서 다루지 못한 공공주택들을 포함할 경우 더욱 명백해진다. 청년주택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고, 그런 면에서 청년주택을 둘러싼 분노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상성으로 은유되는 기존의 정책에서 배제당하고, 보완책으로 나온 정책에서마저 배제당하는 사람들. 이들은 공공임대주택 분배가 정상성을 넘어서지 못했을 때 소외되는 인구이며 동시에 빈곤함으로 인해 행복주택-청년주택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인구이다. 바로 이들, 정상성과 자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이야기할 때다.
2019년 10월 8일
민달팽이유니온
[논평]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호명하는 시민은 누구인가
-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이슈에 부쳐
엇갈리는 평가와 실적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이하 청년주택) 첫 입주자 모집공고가 2019년 8월 29일 발표되었다. 청년주택의 취지는 자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청년층을 위해 역세권에 위치한 임대주택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급면적은 평균적으로 1인당 5평 정도이며 임대료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국민임대주택 수준이며 민간임대주택의 경우 시세의 85%에서 95% 사이에서 결정된다.
이처럼 좁은 면적과 높은 임대료로 인해 청년주택을 둘러싼 여론은 비판조를 이루었다. SNS는 청년주택이라는 키워드로 도배되었고 언론은 앞다투어 시민들의 반응을 보도했다. 그러나 세간의 반응과는 다르게 9월 20일 발표된 청약경쟁률은 최고 344:1까지 기록을 경신했다. 최악의 공공주택이라는 평가와 백단위의 경쟁률. 많은 사람들이 청년주택을 비판하였으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청년주택에 청약을 넣었던 것이다.
이 둘은 모순된 현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5평의 최저기준을 겨우 충족하는 주거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마저도 간절하다”는 하나의 절박한 이야기이다. 높은 청약율을 근거로 들어 청년주택 정책을 높이 평가한다면 이는 현상 뒤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불러내지 못한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을 모두 해석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왜 누군가에게는 고작 5평의 방이 그토록 절실했는가?”
한국도시연구소와 민달팽이유니온이 2014년 3월 발표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청년가구 36%가 주거빈곤상태에 처해있다. 또한 국토연구원에서 발표한 2018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를 비롯한 전체 가구의 자가점유율은 모두 상승한 반면, 청년가구의 그것만은 하락했다. 이처럼 청년층의 주거실태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러한 주거빈곤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공공임대주택이다.
그러나 한국은 공공임대주택 물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더러 선정 체계 또한 혈연 및 혼인 관계를 전제로 하는 정상가족의 틀에 갇혀 있다. 나이, 부양자 수, 지역 거주 기간, 청약 납입 횟수 등을 기준으로 두는 기존의 가점 체계는 청년들에게 또 다른 차별의 요소로 작용했다. 특정 틀에 갇혔다는 한계로 인해 공공임대주택은 주거빈곤을 해소하기보다는 1인 가구, 청년, 장애인, 이민자, 성소수자, 비혼 가구 등 사각지대로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넓은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정형화된 빈곤의 틀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은 아예 없다시피 한 정책이었고 그 와중에 청년주택은 동아줄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행복주택-청년주택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높은 경쟁률은 놀랍지 않은 결과이다.
행복주택에서부터 청년주택까지, 무엇이 문제인가?
한편,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을 보완하고 청년들을 위한 주택이라며 등장한 행복주택 역시 틀을 깨뜨리는 답이 되지 못했다. 2016년부터 공급되어 온 행복주택은 이전의 공공임대주택이 포섭하지 못했던 계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는 점과 비교적 지리적 위치가 좋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몇 가지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고 이 결함들은 청년주택으로까지 이어졌다.
첫 번째 결함은 1인 가구의 공간 형태를 원룸으로 제한했다는 점에 있다. 기존의 핵가족 체제가 붕괴되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1인 가구를 포섭하기 위해 정부는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불리는 원룸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원룸은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문제적이지만, 더욱 문제적인 지점은 주택공급정책이 청년을 비롯한 비혼 1인 가구를 임시적 존재로서 바라본다는 사실에 있다. 그 이면에는 청년을,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를 임시적인 상태로 인지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이는 신혼부부에게 공급하는 임대주택 물량의 비율을 보면 더욱 확실하게 증명된다.
실제로 청년주택은 신혼부부 주택 비율이 30% 이상이며 청년 1인 가구에게는 최저주거기준을 겨우 상회하는 5평의 공간을 공급한다. 식사, 공부, 수면을 5걸음 안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이 한 사람의 주거권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래 원룸이란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집어넣기 위해 고안된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가 선제적으로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는 공공기관의 실적과도 긴밀하게 연결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실제 삶은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다. 휠체어는 애초에 들어갈 수조차 없고, 손님을 초대할 수도 없다. 오로지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재생산만을 보장하는 임시 거처. 국가는 지금 1인 가구에게 그런 주택을 보급하고 있다.
두 번째 결함은 시세 기준 임대료의 도입이다. 시세라는 시장의 언어가 공적 영역으로 들어오자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급격하게 공공성을 잃으며 빈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공공임대주택은 소득 기준 임대료까지는 못하더라도, 당해 주택가격을 임대료 책정의 근거로 가져왔다. 반면 행복주택은 최근 1년간의 주변 시세 감정가를 기초자료로 사용한다. 이는 임대료를 상승시키는 동시에 수요자 계급의 변화를 불러왔다. 도심에 시세 60%의 집을 얻을 수 있는 건 분명 행운이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그 행운은 시세 60%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주택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공임대주택 물량은 시세의 30%로 저렴한 편이라고 해도, 그것은 전체 물량의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시세의 85%에서 95% 수준에 이른다. 이렇게 임대료가 높게 책정된 이유는, 행복주택이 토지매입에 대한 지출을 메꾸기 위해 시세기준 임대료를 들고 나왔던 것처럼, 청년주택 역시 재정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간 소유 토지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공공과 민간의 결탁
서울시 측에서는 이러한 정책구조를 두고 민간과 공공의 협력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결탁에 가깝다. 서울시는 적은 지출로 8만 호라는 공공임대주택 실적을 올리기 위해 민간에게 용적률을 완화하고 8년 이후의 분양 전환을 약속했다. 토지주들은 8년만 기다리면 분양 전환을 할 수 있고, 용적률이 완화된 역세권 지역에서 시세 차익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차액을 노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명백한 자본의 승리이다. 더 선명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부동산 시장 규제에 앞장서야 할 공공이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부동산 업자들의 배를 불려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역세권 2030은 수익을 보장받고자 하는 민간과 재정을 지출하지 않고자 하는 지자체 및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정책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이해관계가 곧 정책 대상을 감싸안는 데 한계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공기관의 지출을 보호하고 민간사업자의 손을 빌리는 식의 공급 정책을 유지한다면 임대료는 일정 정도 이하로는 낮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빈곤한 이들에게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국가가 지출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주택의 임대료를 올린다면, 그래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계급의 사람들만 들어간다면, 그 공공주택의 존재 의의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공공임대주택의 대상이 되어야 할 청년은 보증금으로 9천만 원을 낼 수 있는 청년이 아니다.
정상성과 자본 사이에 버려진 사람들
이처럼 공공임대주택 전반의 기조는 과도하게 시장논리에 기초하고 있으며 차별적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확충하기 위한 복지 지출을 손해로 규정하고, 정상성에 편입하지 않는 이들의 주거권은 보장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미처 글에서 다루지 못한 공공주택들을 포함할 경우 더욱 명백해진다. 청년주택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고, 그런 면에서 청년주택을 둘러싼 분노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상성으로 은유되는 기존의 정책에서 배제당하고, 보완책으로 나온 정책에서마저 배제당하는 사람들. 이들은 공공임대주택 분배가 정상성을 넘어서지 못했을 때 소외되는 인구이며 동시에 빈곤함으로 인해 행복주택-청년주택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인구이다. 바로 이들, 정상성과 자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이야기할 때다.
2019년 10월 8일
민달팽이유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