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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고] 서유럽 주거도시 민생기행2: 비엔나주택공사(Wiener Wohnen), 비엔나의 사회주택들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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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 2/27(목)~2/28(금)


비엔나주택공사(Wiener Wohnen)


비엔나주택공사 개요

기행단은 2/27(목) 비엔나주택공사(이하 공사)를 방문하여 비엔나시의 사회주택 정책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당초 비엔나의 사회주택연구소와의 미팅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연구소의 일정으로 급작스레 미팅이 어려워지면서 공사의 해외협력 관련 책임자인 크리스티안 찬틀이 공사와 연구소 모두를 대표하여 정책을 설명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선거를 통한 공화정 정부가 들어섰고 비엔나시정부의 집권은 사회민주당에서 하였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사회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정책과 사회주택 정책이 발전하였습니다. 비엔나에서 사회주택은 저렴하고 커뮤니티를 제공하며 시민교육의 현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공사는 이러한 비엔나시의 사회주택 전체를 관리하는 조직으로 최근에는 그 규모가 커져 다양한 자회사들을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기행단이 방문한 공사의 헤드쿼터 건물에서 1,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3,000명의 직원은 비엔나시 사회주택 단지 내 청소, 시설관리 등의 현장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헤드쿼터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는 사회주택 입주를 원하는 시민들이 입주신청을 할 수 있는 센터(Wohn Service)와 임차인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조정하는 기관 등이 있습니다.


비엔나시의 주거상황

비엔나는 인구가 190만으로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동시에 하나의 도시이면서 예산의 지출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자치정부입니다. 총 23개의 구가 있고 UN, OPEC(석유수출국기구) 등의 국제기관도 위치해 있습니다. 비엔나는 서울과 비교해서는 작지만 유럽에서는 6번째로 큰 도시이고, 독일어권 도시들 중에서는 베를린 다음으로 큰 도시고, 독일어권 도시들 중 가장 큰 대학도시입니다. 

비엔나는 가장 큰 도시일 뿐만 아니라 유럽 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로 매년 인구가 수만 명씩 유입되고 있고 2015년에는 최고점을 찍어 4만 명의 유입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인구 증가와 함께 비엔나시에서는 주택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고, 시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진흥기금사회주택을 건설하며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비엔나 시민의 50%는 사회주택(시영사회주택+진흥기금사회주택)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비엔나시의 사회주택과 세입자 보호 정책

사회주택 건설을 위한 비엔나시의 지원에는 (1)신축, 리모델링 등을 통해 주거비용을 직접 투자하는 것(매년 5억 유로)과 (2)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임대료를 지원하는 것(매년 1억 유로)이 잇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주택에 관련된 세금으로서 개인 소득세의 0.5%와 법인 소득세의 0.5%(합쳐서 전체 소득세의 1%)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 중 비엔나시는 2억 6천만 유로를 국비로서 지원받고 있습니다.

비엔나에서는 다양한 세입자 보호 장치들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월세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게 하는 상한제를 시행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소셜믹스의 결과 비엔나시에 게토가 없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사회계층이 비엔나 전체에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비엔나에서는 사회주택의 비율이 높아 민간임대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월세 수준을 살펴보면 비엔나시의 시영사회주택-카테고리A(흔히 생각할 수 있는 모던주택으로 중앙난방과 욕실 등 모든 시설 완비)는 5.81유로/m2(세전), 카테고리B(카테고리A와 달리 중앙난방은 없음)는 4.3유로/m2, 카테고리C(중앙난방, 욕실 모두 없음)는 2.91유로/m2입니다. 비엔나시의 민간임대주택 월세(10.5유로/m2)와 전체 유럽 내 주택임대료와 비교하면 비엔나 사회주택의 월세는 지속가능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엔나시의 모토인 “비엔나는 다릅니다(Wien ist anders)”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듯이 비엔나의 시영사회주택은 전체 임대주택의 25%, 오스트리아 전체 지방정부 소유 사회주택은 16%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엔나는 세입자를 위한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비엔나 세입자의 3/4이 사회주택에 거주하고, 자가소유율은 20%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비엔나에서 1인당 평균 공간소유율은 35m2이고, 주택 한 가구당 거주인원은 2.5명 수준입니다.

한편, 비엔나의 사회주택은 그 오랜 역사로 1919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이 30%나 되고 1971~2011년 사이에 건설된 주택 역시 36.4%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엔나 사회주택 입주자격

비엔나 사회주택이 입주하기 위해서는 입주신청시 만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2년 이상 비엔나가 주거지로 기록되어 있어야 하며, 월소득 상한선도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1인 가구의 경우 3,317유로/월, 2인 가구는 4,494유로/월, 3인 이상 가구는 5,000유로/월을 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1인이 3,317유로/월 정도의 상한선을 지니는 것은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실제로 비엔나 전체인구의 75%가 이 정도 수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전체가 사회주택에 입주해 살 수 있는 수준의 입주자격으로 비엔나시는 이를 바탕으로 소셜믹스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시영사회주택에는 스마트주택이라는 것이 있는데 30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이 부모와 살다 독립하여 살게 되는 경우 우선적으로 입주할 수 있는 집입니다.


비엔나 사회주택의 종류 개괄

비엔나에서는 시가 직접 소유하고 있는 시영사회주택과 진흥기금을 투입하여 지은 진흥기금사회주택이 있습니다. 시영사회주택은 전체주택의 26%로, 이 집에 입주할 때는 월세 외 비용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진흥기금사회주택은 월세 자체는 시영사회주택과 큰 차이가 없지만 사회적기업(오스트리아 사회적기업은 일자리제공형/사회서비스제공형/지역사회공헌형 등으로 사회적기업을 규정하는 한국 사례와 달리 수익을 일정부분 이하로 하고 나머지 이익은 모두 재투자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비롯한 시행사가 그 주택을 소유하고 처음 입주할 때 목돈을 지불해야합니다. 이는 건축비의 일부를 지불하는 것으로 전체 건축비의 12.5% 수준인 250~300유로/m2(주택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0,000~35,000유로)입니다. 이렇게 지불된 목돈은 매년 1%씩 차감된 후 사회주택을 나올 때 돌려받는데 예를 들어 10년을 거주하면 10%가 차감되고 남은 돈만 돌려받는 것입니다.


시영사회주택(Gemeinde Wien)

비엔나에서는 1918~1922년에 걸쳐 최초의 사회주택이 건립되어 100년이 넘는 시영사회주택 건립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1,800개 정도 되는 시영사회주택이 비엔나시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시영사회주택 단지는 1/4~1/3만 주택이고 나머지는 녹지공간과 놀이터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비엔나시의 사회주택이 처음부터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비엔나에서는 100,000명 이상이 집 없는 사람들이었고 주거환경 역시 열악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따른 위생문제로 결핵환자가 많아 당시 결핵을 비엔나병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비엔나시 정부를 통해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시정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주택을 건설하여 6만 가구 이상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집들은 파시즘, 나치,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전쟁기간에 파괴된 주택이 80,000채로 다시 주거난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좌절에도 불구하고 비엔나시는 많은 비용을 들이며 사회주택을 건설하여 1950년대에 가장 많은 시영사회주택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주택건축기법도 발전하게 되었는데 1970~1975년 사이에는 한국 아파트의 모델이 되는 판상형주택이 많이 지어졌고, 그 이후에는 비엔나 변두리에서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하기도 하였습니다. 비엔나시의 사회주택 공급 노력으로 현재 전체 비엔나시에 시영사회주택은 1,800단지, 220,000호로 상점 등은 5,100개, 47,000대의 주차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럽에서 가장 큰 시영사회주택 규모입니다. 이런 시영사회주택의 관리는 건물의 관리 뿐만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들의 관리도 포함합니다. 세입자들 사이의 갈등을 관리하고 주거상담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화상담은 24시간 7일 모두 가능한데 1년에 1,000,000건 수준이 있고, 엘리베이터 고장, 수도시설 파괴 등 위기 상황시 대응하고 해결하는 요원들도 있습니다. 전체 주거 관련 서비스가 갖춰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서비스는 공사의 직원들과 더불어 Wohnpartner 150명이 전체 단지를 돌아다니며 이웃관계 관리 등을 통해 제공합니다.

 

진흥기금사회주택(Geförderter Wohnbau in Wien)

한편,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기존에는 시영사회주택을 주로 건설하였지만 1950년을 전후해서 진흥기금사회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2004년 마지막 시영사회주택을 기점으로 현재는 진흥기금사회주택만 건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주택 공급에서 시영사회주택으로부터 점점 진흥기금사회주택으로 옮겨가게 된 것은 자금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시영사회주택은 100% 시의 자금으로 건설되지만 진흥기금사회주택 건설에서는 시가 1/3만 지원해주고 나머지는 시행사가 다양한 방법과 크레딧을 활용해 충당하는 것입니다. 이때 시행사는 1%의 이자로 최대 35년의 상환기간을 보장받습니다(최근 한국의 주택공사들도 이러한 대출 프로그램에 대한 요청을 많이 하고 있음). 지금까지 진흥기금사회주택은 20만 호로 시영사회주택 22만 호와 더불어 이 두 사회주택은 비엔나 주택의 50% 정도입니다. 

이런 진흥기금사회주택의 운영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Wohnfonds-Wien입니다. Wohnfonds-Wien은 (1)주택건설에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고, (2)시행사 현상설계에서 사회적기업 시행사가 건축사, 설계사와 함께 제출한 설계를 관리하여 주택이 건설되도록 합니다. 사회주택 공급에서는 토지확보가 특히 중요한데 현재 Wohnfonds-Wien은 280,000m2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가 토지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 비엔나 토지가격의 비용 관리 역할을 하게 됩니다(현재 비엔나 토지가격은 800~1,200유로/m2). 

진흥기금사회주택은 사회적기업인 시행사를 통해 지어집니다. 이 사회적기업은 자기수익은 제한되어 있고 이를 초과하는 이익은 재투자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행사가 비용을 측정할 때 실제 월세 비용, 주택 유지 비용 이상의 수익을 얻지 못하게 구조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현재 비엔나에서 가장 큰 도시재생지역에 10,000가구가 만들어져 있고 또 비엔나의 역사 현장인 중심지 근처를 확보해 새로 개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신축주택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하의 주택은 토지수용위원회에서 평가합니다. 이때 현상설계를 받는데 그 평가기준은 (1)사회적 지속가능성, (2)건축성, (3)경제성, (4)친환경입니다.  


주택 리노베이션

또, 비엔나에서는 오래된 주택이 많아 지속적으로 리노베이션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시영사회주택과 진흥기금사회주택이 아닌 민간임대주택도 비엔나시의 몇가지 요구를 수용하면 개별주택이든 특정 지역규모에서든 진흥기금을 지원받아 리노베이션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비엔나시는 민간임대주택 리노베이션에 대한 진흥기금 지원의 조건으로 리노베이션 후 임대료 상한제를 두어 임대료 인상을 하지 않는 것과 기존 세입자가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권리는 주는 것을 요구합니다.

리노베이션으로는 주택의 지붕층을 주거용도로 바꾸거나 발코니 확장, 엘리베이터 넣기, 전체 주택으로 배리어프리로 고치는 것 등을 합니다. 이 밖에도 단열재를 보강하여 전체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하는 리노베이션도 지원하는데 이를 통해 난방비가 기존주택의 50% 수준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질의응답

비엔나에서 사회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었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역사적 배경이 중요했습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비엔나에서는 2차 세계대전 기간의 파시즘으로 잠시 중단된 시기를 제외하고는 사회민주당에 계속 집권해 사회주택을 공급해왔습니다.


부담가능한 임대료 책정을 위해 어떤 방식을 채택하고 있나요? 입주자 수준과 건설비용 보전을 어떻게 고려하나요? 소득 대비 임대료(RIR)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주거비 보조 제도는 이때 어떤 영향을 주게 되나요?

임대료 수준에 관한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졌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남성들은 대부분 전쟁에 끌려가고 비엔나에는 여성만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성과 아이가 사는 집의 월세를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는 이 사람들의 상황을 돌보고 이들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처음으로 임차인 보호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사고와 문화가 공화정이 들어서고도 임대에 관한 법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임대료 책정은 칼맑스호프와 같은 사회주택이 지어지던 초기(1920년대)에는 RIR 10%로 책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건설비와 토지비가 오름에 따라 자기이윤율이 적어지면서 일반 건설시장에서 주택건설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를 반영한 비용조정이 이뤄졌고 1945년부터 확정된 임대료인 5.81유로/m2가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이때 세입자의 소득에 따라 임대료 차등을 두는 제도는 비엔나에 없습니다. 주택의 크기에 따라 임대료가 정해져 있고 그것을 내야하는 것입니다. 다만,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임대료 보조는 있는데 그것이 매년 1억 유로 정도입니다. 만약 수입이 적은 5인 가구라고 한다면 1인당 거주공간은 정해져 있고 그런 평균 거주환경에 들어가기 위한 현금보조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수입아 아니라 그 주택의 가구원들의 총수입과 임대료 차이만큼의 보조금이 나옵니다.


1945년 정해진 5.81유로/m2 임대료에 물가상승 등은 반영되지 않은 것인가요?

이 임대료는 기본적으로 시영사회주택의 임대료 입니다. 5.81유로/m2는 현재 수준이고 1945년부터 조정해 나간 것입니다. 가장 최근이 20년 전 정한 5.81유로/m2이고 여기에 물가만 반영하고 있습니다. 비엔나는 법적으로 주택 소유주가 이익을 남기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신축이나 리모델링 주택의 배분은 어떻게 하나요? 임대주택의 배분은 어떻게 하나요? 신축이나 리모델링 주택의 입주자격은 어떻게 되나요?

시영사회주택에 입주를 원하는 사람은 매년 8,500호에 새로 들어갑니다. 대기자명부(waiting list)가 있고 거기에 맞춰 입주하는데 명부에 올라가서 보통 1년~1년 6개월 정도 대기합니다. 시가 빈 주택을 대기자들에게 배분하는 것입니다.

진흥기금사회주택은 7,000~10,000호가 건설되고 있습니다. 주택이 공급되는 지역과 프로그램 내용이 공개되는데 여기에 직접 신청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주택에 입주할 확률이 높고, 상대적으로 대기자명부가 짧습니다.

기본적인 입주자격은 앞서 설명 드렸듯이 만 18세 이상에 2년 이상 비엔나에 거주해야 하고 1인 가구는 월 3,317유로, 2인 가구는 월 4,494유로, 3인 이상 가구는 월 5,000유로의 소득 상한이 적용됩니다. 이때 부모자산과 자기소유자산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고 월수입만 고려됩니다. 입주당시 소득만 보고 입주 후 소득 증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시영사회주택과 진흥기금사회주택의 토지공급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Wohnfonds-Wien에서 미리 토지를 수급해서 주택을 짓습니다.


진흥기금사회주택의 토지는 공사에서 분양하지는 않나요? 시행사 입장에서는 주택을 공급할 때 토지비와 건축비가 초기비용입니다. 그런데 토지비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면 건축비만 고려할 수 있어 비용부담이 많이 줄 수 있는 것 같아 물어봅니다.

진흥기금사회주택은 현상설계를 통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1등으로 당선되면 (1)토지까지 파는 경우와 (2)건축하는 권리만 주는 경우 모두 있습니다. 이때 토지가격도 정해져 있는데 비엔나시 토지가 보통 800~1,000유로/m2인데 이것을 200유로/m2로 제공합니다. 이렇게 제공받은 토지로 시행사는 이윤을 남길 수 없게 되어 있고 이것은 임대료에만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진흥기금사회주택은 시행사가 자신의 돈으로 집을 짓고 토지를 사더라도 이를 되팔 수 없고 시행사는 그 주택을 다른 진흥기금사회주택 수준으로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오스트리아 특유의 사회적기업 주택 관련 법적 개념인데 특정한 종류의 주택에 대해서는 법으로 규정화되어 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택들을 지을 수 있는 주택협동조합과 기업들도 법률에 의해 정해져있고 시의회는 이런 기업들을 항상 컨트롤합니다. 그리고 이들 시행사는 주택을 지을 뿐만 아니라 입주 후 운영관리도 합니다.


커뮤니티 서비스에 보육, 세탁, 교육, 일자리 같은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있나요?

사회주택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공동세탁소가 들어갔고 보육도 모든 단지에 시설이 들어가 있고, 도서관도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 외는 적극적으로 서비스하지는 않습니다. Wohnpartner 같은 경우가 위탁을 받아서 거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관리합니다.


Wohnpartner가 세입자들 사이의 갈등 관리를 하면 일종의 공무원이 시민의 삶에 관여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시민들의 삶을 과도하게 침해하지는 않나요?

Wohnpartner가 개인의 사적 공간, 영역에 침범할 수는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주민의 요구가 있을 때 원하는 수준까지 갈등이 해결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지 그 갈등이 깊어지면 경찰이 개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아파트를 생각해보면 입주자관리대표회의에서 관리사무소를 외부회사에 위탁합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의 부패가 심해서 공무원을 파견해 관리해줄 것으로 요구하기도 합니다. 비엔나의 사회주택에서 준공무원들이 갈등관리를 하면 사생활 침해가 없지 않을까요?

(다른 기행단원의 답변) 한국 아파트의 경우 관리사무소에서 갈등관리를 안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재개발지역에 분양주택동과 공공임대주택동을 구분해서 건설하고 그에 따른 갈등이 심합니다. 비엔나에서는 초창기에 사회주택을 만들면서 어떻게 통합을 이룰 수 있었나요? 소셜믹스라는 정책을 어떻게 초창기부터 원활하게 채택할 수 있었나요?

사회주택 건설초기에는 지금과 상황이 달라 오히려 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와서 소셜믹스 문제가 발생해 비엔나에서 대응해왔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비엔나시는 다른 유럽의 도시와도 다르게 사회주택을 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택 입주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한 세입자는 어디에서 살 수 있나요?

민간임대주택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사회주택에서 임차는 영구적으로 가능하고 자기가 죽으면 양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회주택의 운영전반에서 NGO, NPO 단체, 이해관계자들과 협력이 있나요? 예를 들어 도시계획위원회에 이해관계자가 들어가 발언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GO, NPO가 들어가는 경우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진흥기금사회주택 중 일부 실험적 주택을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같이 사는 ‘특수주택’ 프로그램 같은 예가 있는데 이때 협력할 수 있습니다.


비엔나시 사회주택 방문


기행단은 2/28(금) 비엔나시에 거주하는 이병훈 건축사님과 함께 몇몇 사회주택들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날 이병훈 건축사님을 통해 방문한 사회주택의 특징과 더불어 비엔나시 사회주택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엔나시는 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계획하여 1919~1920년에 최초의 사회주택인 Metzleinstaler Hof를 건설한 이후 지속적으로 시영사회주택과 진흥기금사회주택을 공급하여 현재는 사회주택이 전체 임대주택의 50%에 달하고 있습니다. 기행단은 이들 사회주택 중 5군데를 방문하였습니다.

 

칼맑스호프(Karl Marx-Hof)

‘주거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소개되기도 한 칼맑스호프는 1930년에 완공된 사회주택으로 '칼 막스 호프'는 20세기 초 빈시(市) 주도로 노동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건설한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으로, 단일 주거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설입니다. 건물 길이가 1,100m, 폭은 101m에 달하며 현재 5,500여명 거주중입니다. 칼맑스호프의 건물의 중간에 있는 미래를 위해 씨뿌리는 사람 동상은 칼맑스호프의 상징입니다. 단지 안에 다양한 예술품들이 있는데 이것은 텍스트보다 예술품이 프로파간다로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서민, 노동자도 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주택을 노동의 입장에서 보면 남성 노동해방과 여성 노동참여를 의미하는데 그에 따라 전통적 가정에서의 노동문제 해결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주택 안에는 공동세탁소, 탁아소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독일은 전후 심각한 주택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데 넓지 않은 공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주택을 단기간에 건설해야했습니다.  

이 과정에 참여한 건축가 마가레테 쉐테 리호츠키(Margarete Schutte-Lihotzkynds)는 좁은 공간을 효율적이면서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든 수납장과 동선 시스템을 설계한 시스템 키친(프랑크푸르트 키친)을 만들어냈습니다. 비엔나의 주택도 이런 모델을 적용했습니다.

비엔나에서 주택은 항상 만들어져 온 것이지만 소유자가 자기를 위한 주택을 짓는 것은 별의미가 없는 것으로 봅니다. 서민층을 위한 건축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건축은 단독주택이 아니라 좁은 공간에 효과적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짓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외에 정치적,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게 됩니다. 칼맑스호프는 그러한 주택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었고 대규모 서민주택 건설의 시작이었습니다. 

칼맑스호프가 사회주택의 전형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건물의 중앙에는 호프(중정 구조, 호프는 건물이 공간을 둘러 싸면서 가운데에 중정이 드러나는 것을 가리키다가 이제는 건축물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가 아니라 앞이 트여진 채로 바로크 양식인 명예의 궁정으로 지어진 점입니다. 그 정도의 권위와 존엄을 가지겠다는 것을 보여주며 노동자들이 자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스템이 정착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주택의 핵심은 (1)건축, (2)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3)사는 사람들의 자기계발과 의식 고취입니다. 칼맑스호프에 깃발 등을 설치해 위용있게 만든 것은 이런 점에서 의도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업을 추진한 사람들의 사상을 예술품으로도 전하고 있습니다. 칼맑스호프의 건물 중앙부분에는 4개의 동상이 있습니다. 책을 들고 있는 동상은 계몽을, 아기를 안고 있는 동상은 보육을, 쇠사슬을 끊는 동상은 자유와 해방을, 쟁반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동상은 보건과 체육, 육체문화를 상징합니다. 육체문화를 상징하는 동상은 이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출처: 서울특별시(2019), 서울, 통하다-해외전문가 초청 특강: 비엔나, 도시이야기)


이처럼 세입자들이 쫓겨나지 않게 하기 위한 시도를 처음 한 곳은 사실 합스부르크 왕가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혼자 집에 남은 여성들이 쫓겨나는 문제가 전체 사회문제가 되면서 제국이 무너질 위험에 대응하여 세입자 보호 입장을 취한 것입니다. 1917년에는 임대인보호령(Mieterschutzverordnung)을 만들고, 1918년에는 주택징발법(Wohnunganforderungsgesetz)으로 방이 3개 이상 집은 주거가 필요한 사람에게 임대하도록 강제하고, 1919년에는 저택법(Schlossergesetz)을 통해 전쟁미망인과 아동의 거주를 보장하고, 1922년 세입자 보호법을 통해서는 임대료 인상 억제와 계약기간 보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해서 더 그런 시도를 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탄생한 칼맑스호프와 같은 사회주택은 집합건물법이 없던 시절에 비엔나시에서 직접 해버린 사례입니다. 

이처럼 강력하게 추진된 사회주택을 처음 시작할 당시 목표 중 하나는 주거환경 개선이었습니다. 그때는 비엔나에 결핵환자가 너무 많아 결핵을 비엔나병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이런 질병들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위생에 있습니다. 실제로 제멜바이스(Semmelweis)라는 의사는 다른 연령에 비해 유아의 사망률이 유독 높은 것을 보고 손 씻기 중요성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사회주택 건축의 관점에서 위생문제 해결은 현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에는 문을 열면 바로 거실, 방이었는데 그것이 현관을 통해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구분된 것입니다. 

사회주택의 또다른 모토는 빛, 공기, 햇볕입니다. 반지하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집에는 빛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주택 이전에 비엔나시의 주거환경은 한침대를 야간조, 주간조로 나눠 여러 명이 쓸 정도로 열악했는데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앞선 세 가지 요소가 중요했습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건폐율 기준이 80~90% 수준이었음에도 비엔나시는 이를 50% 이하로 규정하기도 하였고 테라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칼맑스호프의 경우 건폐율이 15% 수준입니다. 칼맑스호프가 계기가 되어 이런 규정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칼맑스호프에는 에어컨이 없는데 이는 건물의 벽을 두껍게 지어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거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단열이 해결되면 많은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고 이를 위해 유럽에서 에너지 등급을 매긴 주택이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오일쇼크 때 느낀 위기감 하에 추진해 로우 에너지하우스, 패시브하우스가 탄생하였습니다. 이렇게 에너지 등급이 높은 주택이 자리잡으면 유럽과 같이 친환경 에너지 개발만으로도 에너지 충당도 가능해집니다.

단지구조의 측면에서 칼맑스호프는 슈퍼블록이기도 합니다. 1914~1934년 붉은 비엔나 시기에 1,000세대 이상이 거주가능하도록 지어진 사회주택 단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사회주택 단지는 공적 공간, 사적 공간, 반사적 공간으로 구성됩니다. 공적 공간인 외부에서 단지의 호프(중정)로 들어와서 단지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자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는 반사적 공간이 형성되고 거기서 다시 사적 공간인 거주민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가는 사적 공간인 집에는 햇볕이 잘 들어오도록 디자인이 이뤄졌습니다. 이전에는 복도형 아파트 구조로 복도에 들어오는 빛을 통해서 부엌이 밝아지는 것을 노릴 정도로 상업회된 주거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것이 계단실형 아파트로 바뀌면서 보다 주택에 햇볕이 잘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칼맑스호프는 문화재보호 대상입니다. 문화재보호에는 그 문화재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과 그 문화재가 만들어진 용도로 계속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칼맑스호프는 후자로 내부는 리모델링이 돼 주거용으로 쓰이고 외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건축의 구조물을 건드리지 않고 내부 리모델링만 하는 것에는 건축허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회주택의 부대시설과 관련해서 맞벌이 가구의 증가 속에서 사회주택의 부엌공간은 줄어들고 거주민들 역시 식당을 많이 이용합니다. 그래서 칼맑스호프에는 없지만 1900년대 초중반에 공동부엌 운동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사회주택 개발이 이뤄지던 초기에는 주택에 목욕시설이 없어서 공동목욕시설을 설치하였습니다. 주차장도 노동자들에게는 자동차가 없어 칼맑스호프가 처음 지어지던 당시에는 없었으나 지금은 지하주차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라벤호프(Raben-Hof)


라벤호프는 1927년에 완공된 사회주택입니다. 단지 앞에 붙어있는 단지도면을 보면 빨간색으로 표시된 건물이 호프이고 번호가 쓰여진 건물이 계단실입니다. 엄청 큰 단지인데 기존에 있던 거리를 따라 작게 작게 나누고 거기에 잘 맞게 사회주택을 만든 것입니다. 1920년대에 지어진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고 할 것입니다. 기존 도로와 외부로 구성된 공적 공간에서 이어진 반사적 공간인 호프(중정)와 사적 공간인 주택이 지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점, 도서관, 유치원 2개, 놀이터, Raben-Hof Theatre(1934~1971년까지 영화관으로 사용) 등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1,000세대 이상이 거주가능한 공간을 슈퍼블록이라고 했는데 슈퍼블록은 라벤호프처럼 도시 안의 도시로서 단지 내부에서 삶이 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건설된 만큼 리모델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 단열보강, 지붕을 주거공간으로 만드는 등의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이때 집을 전부 다 새로 지으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꼭 필요한 부분만 재생하면서 기존 거주민이 쫓겨나지 않도록 구제도 두었습니다. 리모델링도 사람들이 거기 살면서 진행됩니다.

사회주택은 시설의 완비 정도에 따라 카테고리A(흔히 생각할 수 있는 모던주택으로 중앙난방과 욕실 등 모든 시설 완비), 카테고리B(카테고리A와 달리 중앙난방은 없음), 카테고리C(중앙난방, 욕실 모두 없음)*로 나뉘는데 한 단지에 특정 카테고리만 있는 것은 아니고 실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대부분 카테고리A이고 카테고리B, C는 진짜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정도입니다.

장비 카테고리 A (2019.4.1. 기준 평방미터당 임대가격-판매세 및 운영비용 제외 : 5.81 유로)

사용 가능한 영역 : 최소 30 평방 미터

방, 주방 (간이 주방), 대기실, 화장실, 욕실 또는 욕조

일반적인 열 공급 시스템 또는 바닥 난방 또는 동등한 정지 난방

온수 준비

장비 카테고리 B (4.35유로)

방, 주방 (간이 주방), 대기실, 화장실, 욕실 또는 욕조

장비 카테고리 C (2.91유로)

수도꼭지 및 화장실 내부

장비 카테고리 D (카테고리 유형 별로 존재하기도, 없기도 함. 2019년 가격 기준은 없음)

내부에 수도꼭지 또는 화장실 없음


참고로 비엔나시의 주택들의 난방은 기본적으로 쓰레기 소각장을 통해 지역난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비엔나에서는 이것을 도시난방이라고 합니다. 또, 단열을 잡아 난방 에너지 자체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건물이 외단열이고 드라이비트 공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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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난방 : 지역난방은 쓰레기 소각과 열과 전기의 협동으로 이루어는데 비엔나시의 15만 이상의 아파트와 3만3천개의 대량 소비 장소에 배급된다. 지역 난방의 활용은 매년 약 32만 메트릭(metric) 톤의 가열 오일을 절감해준다. 부수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매년 80만 메트릭 톤이나 줄어든다. 또 아황산 가스 방출도 80% 줄어들었다.

(출처: 환경도시 비엔나의 쓰레기와 에너지, 2013.03.10, 쿠쿠쿠뉴스,  

http://www.cucucu.co.kr/n_news/news/news_frame.html?no=661&search_string=&page=23&code=netfu_44711_17340)

 

비엔나시 사회주택의 면적은 ‘전용면적+발코니 면적’으로 계산합니다. 발코니는 실제로 햇볕을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중요한 곳입니다. 비엔나 같은 경우 발코니 새시(sash)는 굳이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주택의 면적과 관련하여 1926년 이전에는 작은 집과 큰 집으로 38m2와 45m2 두 가지 유형만 있었습니다. 사회주택 이전의 주택 형태는 ‘복도+부엌’ 구조였는데 이것이 사회주택의 건설과 함께 거실 겸 부엌이 있을 수 있는 계단실형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택은 최소한 투룸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러던 것이 이후 21m2(1인), 24m2, 40 m2, 49m2, 57m2형으로 다양화되고 거실과 부엌도 점차 분리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입주자의 소득, 입주자가 이용가능한 금융제도 등을 효율적으로 반영한 스마트주택이 있습니다. 스마트주택을 공급하는 데는 비엔나시에 있는 주거수입원들, 가족구성원을 계산해서 현재 가장 필요한 주거크기와 수입 대비 지출가능한 임대료, 가장 효과적인 금융제도 등이 계산됩니다. 그렇게 하여 월 임대료는 7.5유로/m2, 입주할 때 납부하는 목돈은 60유로/m2로 낮춰 입주자의 부담을 최소화합니다. 현재 새로 지어지는 진흥기금사회주택의 1/3은 스마트 주택이고 원룸에서 방 5개짜리까지(A~E) 있으며 70m2, 85m2, 100m2형이 있습니다.

사회주택을 처음 시작할 때 비엔나시는 지방자치를 통해 스스로 추진할 수 있었고 주택의 공급을 위해 세제개혁을 통한 예산확보를 추진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로 기존에 주택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을 매기는 주택세를 만들었습니다. 당시는 소유자가 왕정 하에 있던 사람으로 구분되고 있었고 그런 상위 0.5%에게 전체 주택세의 45%를 부과했습니다. 주택세 외에도 자동차세, 말 보유세 등 부유세를 많이 걷었습니다. 그렇게 확보한 시드머니로 비엔나시는 사회주택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반발로 2차 세계대전 즈음해서 쿠데타를 겪기도 했지만요.

참고로 현재 비엔나시는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정정부입니다. 사회민주당으로서는 극우 및 보수세력과 연정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런 배경으로 녹색당은 비엔나시에서 행정을 시작했습니다. 내각(cabinet) 구성에서 녹색당 소속의 교통, 도시계획, 환경 책임자가 부시장으로 포함되어 보행자 도로가 많이 만들어지고 교통비도 줄어들었으며 주차비는 많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많은 반발을 속에서 어쨌든 녹색당은 그런 성과를 통해 사회민주당의 표를 갉아먹는 수준까지 성장했다고 합니다. 

비엔나시의 사회주택을 도시구조의 시각에서 보면 비엔나의 링슈트라세(Ringstrasse)는 부르주아 거리인 반면, 귀어텔슈트라세(Gürtelstrasse)는 프롤레타리아의 거리로서 여러 채의 사회주택이 만들어졌습니다. 시영사회주택에는 모두 언제 이 주택이 지어졌는지 벽면에 적혀 있습니다.


로이만호프(Reumann-Hof)

1925년에 완공된 로이만호프는 비엔나 사회주택에서 국민주택팰리스(Volkswohnung Palast) 건축전형을 만들어낸 집입니다. 공공주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던 것입니다. 과거 궁전으로서 팰리스(palace), 그리고 타워팰리스에서 알 수 있듯이 팰리스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거주하는 공간을 의미하는데 비엔나에서는 국민주택 개념에 이것을 넣었습니다. 일반 국민들도 팰리스에 거주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전형으로 사회주택을 만들고 거기에 비엔나시 1대 시장이자 사회민주당 소속이었던 로이만의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국민주택팰리스를 건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로이만호프는 오토 바그너에서 기원된 기념비적 모뉴멘탈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가운데를 높고 트인 구조인 명예 호프로 만들고 발코니도 삼각형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분수대, 대리석 바닥 등을 통해 호텔 같은 느낌의 고급스러운 사회주택을 지었습니다. 로이만호프가 국민주택팰리스의 전형으로 처음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진흥기금사회주택은 건축비는 저렴하면서 아주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가진 주택으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로이만호프 단지 내부에는 벽의 일부를 도자기로 꾸며놓은 곳이 있습니다. 도자기는 원래 유럽의 왕가에서 부의 상징으로 벽에 걸어 놓고는 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사회주택인 로이만호프의 벽에도 도자기를 붙이고 심지어 귀족과 같이 로이만호프만의 문장을 그려두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회주택의 건축은 대부분 벽돌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노동력 창출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비엔나는 연금이 잘 나오는 구조라 시민들이 노후준비 차원의 주택소유보다는 여행 등의 여가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손밴드피어텔(Sonnwendviertel)

칼맑스호프, 라벤호프, 로이만호프는 1920년대에 지어진 시영사회주택이지만 손밴드피어텔은 기존 역부지 중 남은 부지를 주택으로 개발한 진흥기금사회주택입니다. 3개의 단지를 하나로 개발했고 그에 따라 3명의 건축가, 3개의 사업체가 이 주택의 건설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3개의 사업체가 관여하지만 지하주차장, 공공부대시설 등을 각 단지마다 넣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택입니다. 손밴드피어텔은 큰 규모의 지하 수영장, 어린이 놀이시설로 실내 암벽등반시설, 공용부엌, 개방형 그릴, 방음시설이 된 음악연주공간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한 동에는 벽체가구형 주택을 지어 그 집에서는 거주민의 필요에 따라 집의 구조를 변경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커플이 입주해 살다가 아이를 키우게 된 경우 방을 추가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손밴드피어텔과 같이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사회주택의 임대료는 지어진 지 100년 가까이 된 사회주택의 임대료와 큰 차이가 없어 시민들은 최근에 지어진 사회주택에 입주하기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손밴드피어텔을 비롯해 비엔나시 사회주택들의 건축비는 대체로 비슷하고 한국의 건축비와 비교해도 높거나 하진 않다고 합니다. 때문에 주어진 비용 하에서 어떻게 주택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때문에 현상설계를 통해 공급되는 진흥기금사회주택은 같은 건축비가 지출됨에도 모든 사회주택들의 형태와 테마가 다른 다양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의 측면에서도 사회주택 건축비로 패시브하우스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국가에너지 정책과 관련해서 새로운 도시 건설에서는 교통과 건물의 배치가 핵심이지만 기존에 있던 주택은 다른 수단으로 열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너지 효율에서 주택에 거주하는 개인이 불을 끄면서 에너지를 아끼는 것은 가장 효과적이지 않은 대응 수단입니다. 패시브하우스는 기존 주택 난방비의 1/10~1/8 정도에 유지될 수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약간은 있지만 비엔나에서는 여름에는 약간 덥지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겨울에는 추운 느낌만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난방은 주택의 에너지 효율 외에 도시난방 시스템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냉방도 최근에는 난방과 같이 냉방관을 통해 제공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 중입니다.

손밴드피어텔은 한국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와 관련해서도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손밴드피어텔의 한 건물에는 1층은 유치원, 2~3층에는 양로원, 그 위층들은 주택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맞은 편 건물에는 장애인 시설과 청소년 시설이 있습니다. 유치원, 양로원, 청소년 시설은 다양한 소셜믹스 중 세대(generation)에 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장애인 시설은 탈시설화되어 있고 장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엔나에서 돌봄(care)은 시설과 탈시설이 공존하는데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돌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보편적입니다. 특별히 양로원 등에 들어가고 싶으면 연금을 모두 몰아 거기에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주택의 공급을 시행사와 함께할 때의 장점은 시행사는 시행에서 효율적인 부분을 찾고 건축사는 건축에서 저렴하면서 주택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저렴한 것만이 아니라 저렴하면서 질(quality)을 좋게 하는 것이 진정한 부담가능성(affordability)인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많은 주택들이 성냥갑과 같은데 비엔나에서 사회주택들이 다양한 것을 보면 이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진흥기금사회주택의 현상설계 과정은 어쨌든 공정하게 참여하여 실력이 좋은 시행사가 당선되는 것입니다. 이때 심사에는 그 주택의 테마에 따라 사회학, 심리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합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현상설계를 추진하여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주택이 만들어지는 비엔나와 달리 공공부문이 이끌어가는 구조가 강한 한국의 특성 때문에 한계는 있는 상황입니다.

손밴드피어텔의 사례는 아니지만 비엔나의 한 사회주택은 청년주택과 (대학생)기숙사를 섞어 놓았습니다. 여기의 핵심은 운동시설(피트니스), 공연시설, 사우나 등을 지하에 넣은 것입니다. 이 주택을 공급할 때 청년주택의 핵심으로 유연성(flexibility)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를 위한 설계와 기획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예를 들어 커플이 사는 공간에 용도에 따라 변경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해 아이를 키우게 됐을 때 여기를 추가적으로 임대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사회주택은 입주기준에 연령 기준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비엔나에서도 최근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1인 가구 사회주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비엔나에서 주거는 주거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현대 이후의 발상이고 전통적 중세도시는 중상복합이 기본이었습니다. 사회주택에서는 체납에 따른 퇴거가 있기도 한데 주거비 보조 제도가 있어 결국 퇴거는 거주민의 의지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비엔나에는 객관적으로는 홈리스가 없고 다만 본인 진짜 집에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아 거리에서 사는 홈리스들이 실질적으로 있는 상황입니다. 시설, 주거에 들어가길 원하면 들어갈 수 있지만 집시 등의 사람들은 적응을 하지 못해서 자발적 홈리스로 남아있기도 한 것입니다.

한 가지 유의해서 이해할 점은 이렇게 잘 제도화된 비엔나의 사회주택 제도에 유학생, 이주민 등은 들어와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회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는 시민권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비자가 없는 사람, 그냥 비자로 거주하는 학생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주택에 입주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 주택들이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령 등에 의한 입주차별은 없습니다.


자그파브릭(Sargfabrik)

자그파브릭(Sargfabrik)은 독일어로 ‘관공장’이라는 뜻으로 이 사회주택은 합스부르크 제국 시설 관을 짜던 공장이었는데 이를 코하우징(co-hosuing; 서울시에서 이를 공동체주택으로 번역하여 한국에 도입되어 있기도 합니다)으로 개발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코하우징의 이름을 이렇게 짓는 것이 마케팅 테크닉적으로 좋겠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징으로서 단지의 중간에 관공장 시절의 굴뚝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공동체를 구성해 자그파브릭을 짓는 1차 프로젝트(70가구)는 1996년에 완공되어 현재는 20년이 넘은 주택입니다. 자그파브릭은 전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친 사례입니다. 거주민 요구에 의해 디자인이 나왔고 주택의 운영도 주민들 스스로가 하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으로 거주민의 만족도도 높고 이 집에 입주하길 원하는 시민들도 많아 대기자명부(waiting list)가 아주 길었고 이런 대기자들을 모아 2차 프로젝트(40가구)를 추진했습니다. 그렇게 추가로 지어진 자그파브릭은 1차 프로젝트 단지로부터 150m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그파브릭에는 1차와 2차 프로젝트를 합쳐 22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지어지는 코하우징의 대부분은 30~40세대 규모로 자그파브릭과 같이 110가구에 이르는 사례는 없고 많은 곳에서 이 사례를 배우러 찾아오고 있습니다. 


자그파브릭을 설계한 프란츠 숨니치(Franz Sumnitsch)는 이 사회주택을 통해 많이 알려졌고 현재 본인도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기행단은 이병훈 건축사님의 소개로 자그파브릭을 방문해 프란츠 숨니치로부터 관련 내용을 설명들을 수 있었고 프란츠 숨니치의 사무소인 BKK-3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프란츠 숨니치는 자그파브릭 건축물 전체를 오렌지색으로 칠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1차 프로젝트 단지의 입구 주변에는 식당, 관리사무소, 어린이집, 수영장, 공연장이 있습니다. 이 시설들은 거주민들 스스로 운영되고 있고 특히 공연장은 한달에 15일 이상 운영되면서 실제 수익을 창출하고 운영자금이 마련되어 사람을 고용해 운영할 정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그파브릭은 일종의 주택협동조합인 동시에 코하우징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식당 등 상가의 운영은 조합원이나 상가 운영을 원하는 회사에 맡기기 보다는 실업자들이 실제 일에 참여하도록 하여 사회적 안정을 찾게 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비엔나에 사회주택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음에도 코하우징을 만들게 된 것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만들고 싶었던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진흥기금을 따와 자그파브릭을 짓고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내는데 이르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친한 교사들 중심으로 모여 같이 살자는 구상을 하게 되었고 그 중 구성원 중 건축가가 있었어서 그들의 구상이 실제 코하우징으로 구현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하우징은 무턱대고 따라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닙니다. 자그파브릭은 처음에 공동체를 구상한 구성원을 비롯해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모집했고 이들의 요구를 일일이 반영하여 개별 자기 공간을 각기 다르게 했습니다. 프란츠 숨니치는 이것이 110개의 단독주택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비엔나시와 비엔나주택공사가 최소한 코하우징 구조들이 지속해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자그파브릭의 건축과정을 생생히 기록한 자료는 없지만 오스트리아 연구자들이 이 사례로만 10개의 박사학위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또, 자그파브릭은 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주택을 조합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별 개인들이 소유하면 (공동체가) 깨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유구조 속에서 결과적으로 조합원들 대다수가 자그파브릭에 계속 거주하고 있고 2차 프로젝트까지 추진되었습니다. 프란츠 숨니치에 따르면 2차 프로젝트는 사실 1차 프로젝트 근처에 우연히 땅이 생겼고 한 시공사에서 이 땅에 추가적인 주택을 짓는 것을 제안해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차 프로젝트의 경우 7~8년(건축계획 5년, 건축기간 2년+주택 대상지를 찾는 기간, 주택 대상지의 주변 이웃들과의 조정기간) 동안 수많은 토의를 거쳐 만들어져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2차 프로젝트에서는 1차 프로젝트의 경험으로 코하우징 건축 과정이 시스템화되면서 가장 빨리 지어진 건축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2차 프로젝트는 설계와 시공 권한 모두를 갖는 종합 건축사무소를 직접 만들어 수행했고, 건축계획, 주택 대상지 매입, 건축 모두를 2년 만에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자그파브릭을 지을 때 구성원들 간에는 그냥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생활에서의 공동시설에 대한 논의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1차 프로젝트에는 수영장, 파티룸, 도서관, 공연장, 레스토랑이 단지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하에 위치한 수영장과 공연장은 회원제로 외부인도 이용 가능하고 비엔나에서 유일하고 파티를 한 후 수영장에 직행이 가능한 곳이라고도 합니다. 공연장은 프로그램 리플랫도 있는 일주일에 3~4회 정도 공연이 있습니다. 자그파브릭은 비엔나시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데 공연장이 일종의 문화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연장은 비엔나시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2차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는 1차 프로젝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살면서 발견한 비효율적 공간활용 사례를 반영해 천장의 일부를 높이거나 바닥의 일부를 낮춰 추가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공간의 벽면도 한쪽과 반대편을 다르게 하였습니다. 공동부엌, 공동도서관과 같은 공동공간은 아래, 위 모두가 접근하기 쉽도록 3~4층(한국기준)에 위치시켰습니다. 2차 프로젝트는 1차 프로젝트와 달리 공연장을 거주민용으로만 활용하고 있습니다. 2차 프로젝트의 공동부엌, 어린이집, 세탁실은 하나로 연결되면서도 유리벽을 통해 분리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자기 집의 부엌이 작아 할 수 없는 파티 준비 등을 공동부엌에서 할 수 있고, 또 공동부엌에서 커피를 끓여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의 책은 주민들이 가져와 꽂아둔 것들입니다. 이 세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는 슬로프인데 경사가 높아보이지만 다친 사람들은 없고 아이들이 여기서 노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법적으로 슬로프는 조형물에 해당합니다. 세탁실에는 40세대가 이용하는 세탁기 2개와 건조기 1개가 있는데 이 정도 세대규모에서 세탁기와 건조기는 저 정도면 충분히 운영가능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난방은 바닥이나 공기난방이 아니라 벽체 저열 난방이고 5m에 달하는 높은 공간을 활용해 필요에 따라 방을 추가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유닛은 벽체가 있고 40m2 정도인데 가구별로 2개 정도의 유닛이 있습니다. 옥상에는 농원이 마련되어 30cm 두께의 흙이 덮여 있습니다. 특별히 비료를 주지 않고 빗물로 토지가 유지되는데 건축할 때부터 옥상 방수를 철저히 해 누수도 없다고 합니다. 옥상정원에는 각종 과일나무와 양봉을 위한 벌통이 있습니다. 양봉을 통해 5~10kg의 꿀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또, 처음 지어진 20여 년 전에 이미 옥상에 태양광판을 설치해 온수를 마련하는 로우 에너지 하우스로 만들어졌습니다. 건물 위에 작은 굴뚝들이 있기도 한데 이것은 비엔나 건축법상 지어져야 하는 것으로, 중앙난방이 작동하지 않을 때 나무로 불을 땔 수 있도록 하는 용도입니다. 베리어프리를 위해 건물 하나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서도 비용절감을 위해 다른 건물로 연결되는 다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발코니를 통해 거주민들은 이웃 간의 시선이 교차할 수 있고 복도는 화재대비 외에 개인이 쓸 수 있도록 확장성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프란츠 숨니치는 건축가로서 건축계획과 주어진 건축비 안에서 주택의 질을 높여 자그파브릭이 건축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되길 원했다고 합니다.


자그파브릭에 거주하는 조합원들은 보통 70m2 수준에 살고 임대료 3유로/m2와 관리비 2.5/m2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기타비용으로 처음 입주할 때 60,000~70,000유로/100m2을 지불해야 합니다. 100m2의 집에 사는 한 조합원은 대략 700유로를 지불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비엔나시에서 100m2의 주택에 거주하면 800~1,000유로의 임대료를 내고 있습니다.

주택 내 협동조합의 운영과 관련해서는 전체 거주민이 모이는 총회가 1년에 2차례 있고 기타 작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협동조합 내에는 이사회가 있고, 고용되어 운영업무를 수행하는 직원 12명(1명은 거주민), 거주민이 자발적으로 정원이나 도서관 관리에 참여하는 그룹, 이렇게 3개의 운영그룹이 서로 연계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직원의 인건비는 조합원들로부터 받는 전체 운영비에서 충당합니다. 자그파브릭에서는 공간 임대료 외에 조합원이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운영비를 좀 더 높게 책정하고 있습니다. 운영관리규칙은 주민들이 이야기해서 정하고 있습니다. 조합원 모집에서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선호하며 특히 함께 하는 것에 대해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조합에 결원이 생겨 새로 조합원을 모집할 일이 생기면 먼저 조합원에게 자식의 독립, 이혼 등으로 방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다음으로 조합원의 친구에게 물어봐 사람을 모집합니다. 1차 프로젝트와 2차 프로젝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비슷하지만 2차 프로젝트 거주민들이 좀 더 젊은 편이라고 합니다. 프란츠 숨니치는 거주민들이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결국 자그파브릭은 양로원이 될 것 같다고 농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계단을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거주민들은 정치적으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성향인데 녹색당을 좀더 선호하고 종교는 오스트리아 시민 대다수가 그렇듯 카톨릭이 많다고 합니다. 자그파브릭의 경우 종교가 주거공간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종교기관이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사회주택에서 종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비입주 조합원도 2~3명 있는데 이들은 운영에 관한 의결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그파브릭이 생기고 전체의 80% 구성원은 유지되고 있지만 20% 정도는 이혼, 다른 도시로의 이사 등으로 나가게 되었고 이들 중 비입주 조합원으로 조합원의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당장 들어올 수는 없지만 5~10년 뒤에 다시 자그파브릭에 입주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거주민들은 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이웃 간의 친목은 보통의 마을과 같이 친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함께 공동체를 만드는 목적은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그파브릭은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회적가치를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있는 주택이기도 합니다. 프란츠 숨니치에 따르면 1차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주택 대상지 주변 사람들이 소송을 걸어 2년 간 소송이 진행되었고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지역 주민의 승소 판결을 내려 사업이 한 번 엎어지기도 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했던 이유는 장애인 등 이 주택이 가진 사회적가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자그파브릭에는 노인가구, 난민가구, 장애인 가구 20가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오랜 논의가 진행되면서 처음 모인 110가구 중 20가구가 빠져나가게 되었는데 이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용한 것입니다. 자그파브릭의 임대료는 일반 주택의 임대료보다 싸서 이들의 임대료 부담가능성은 높고 만약 이들이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으면 거주민들이 조성해둔 펀드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2~3가구 임대료 지원 가능 규모). 2차 프로젝트의 공연장 위에는 10명의 어린이들이 같이 사는 아동복지시설도 있고 이곳은 1인 1실에 관리자 1인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기타 사회주택

이병훈 건축사님과 방문한 5개 사회주택 외에도 비엔나를 돌아다니다 보면 임대주택의 50%가 사회주택인 도시답게 곳곳에 사회주택들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 생생한 현장 사진을 추가로 남깁니다.


 HundertwasserHaus: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예술가인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한 사회주택

 

Kurt-Steyrer Hof

   

Leopoldp-Thaller-H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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