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H사태 논평]
투기 권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2021.03.23.
민달팽이유니온
이럴 줄 알았다는 근거 있는 냉소,
그 냉소를 먹고 자라는 ‘투기 권하는 사회’
이럴 줄 알았다는 냉소가 만연하다. LH사태는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토지를 사회적 재화가 아닌 개인의 투기 수단으로만 바라보던 한국 사회의 곪은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오랜 시간, 투기를 방조하고 이를 되려 경제 성장 동력으로 오용했던 한국 사회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굳건히 수호해왔다.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잠재워야 하는 공직자들도 사실상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금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다.
저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근거 있는 냉소는, 모순적이게도 다시금 투기 권하는 사회 풍조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언론을 보고 있노라면, LH투기에서 ‘투기’는 잘못이 없고 ‘LH’만이 문제이며, 저들보다 공정한 방법으로 투기하기 위해 노력해서 주거 안정과 자산 증식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자산의 격차가 곧 삶의 격차가 되는 사회에서
공정한 투기는 기만일 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는 진지한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과거로부터의 자산보유량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곧 삶의 격차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는 자산불평등의 또 다른 말이다. 거주목적 외에 투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주택 들이 모여 가계자산의 격차를 돌이킬 수 없을 수준으로 벌리고 있다. 국토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주택보유여부가 자산불평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며, 이 중 다주택자 집단은 자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또 사회진입계층인 2030세대의 자산불평등도는 다른 연령집단보다 높으며, 비수도권보다는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자산불평등도가 높게 나타난다.
자산 격차가 곧 삶의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 안에서, 투기를 권하는 사회 풍조는 기만이다. 이런 사회에서 투기를 장려하는 것은 이미 가진 자들의 자산 증식 수단을 굳건하게 돕고, 투기꾼들이 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방식으로 획득한 기존 권력을 더 견고히 유지 및 확장하도록 조장하며, 부동산 계급 사회의 존속을 담보할 뿐이다.
차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차별을 가하는 세력이 되라는 모순
한국 사회는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증식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삶 사이에 생기는 간극을 더 심화시킴으로써, 투기 하지 않는 시민에게 끊임없이 보다 나은 세력에 소속되어 더 나은 삶을 보장받으라는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이 메시지에 너무 많은 청년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 사회는 임대인의 횡포에 무방비하게 피해 입는 세입자로 사는 삶을 방치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너 또한 세입자 지위에서 벗어나 임대인의 반열에 올라서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불로소득 없이 노동소득만으로 생계를 꾸리며 노동자로 사는 삶을 향해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동산 투기 하는 사람보다 네 노력이 덜 가치 있으니 억울하면 너도 투기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투기는 절대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 그 자체로 부조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청년들에게 누군가 속삭인다. 투기 반열에 뛰어들라고, 그렇지 않으면 평생 무엇의 노예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이것은 차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차별 받지 않는 세력이 되라는 말과 다름없다.
모두가 투기꾼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할 리 없다
투기 권하는 사회에서 주거권은 권리로 인정받지 못한다. 지금의 한국이 그렇다. 투기로 자산을 증식한 자가 땅과 집을 독점하고 이를 토대로 획득한 권력으로 더 많은 투기를 조장하고 자산불평등을 심화시키기만 하는 사회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고서, 이 사회가 지속가능할 리 없다. 투기꾼들의 불로소득을 떠받치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시민들의 삶이 지속가능할 리 없다. 모두가 투기꾼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할 리 없다.
언제까지고
투기꾼들에게 주거권을 저당잡힐 순 없다
초고속 성장 시대에 경제 발전을 이유로 복지를 국가가 아닌 개별 가정과 개인들에게 떠맡기고, 주거 안정을 비롯한 삶의 안전망 또한 국가가 책임지고 토대를 마련해두지 않은 결과가 지금 아닌가. 민간 주도로 집값 안정을 이루겠다는 감언이설로 부동산 정책들을 좌지우지했던 세월이 쌓여, 마침내 공직자조차도 자신들이 위치한 곳이 어디인지를 망각하고 자신의 성공을 100% 믿는 투기가담자가 되고 만 것 아닌가. 주거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집을 소유해야만 하며, 노후를 대비 하고 자녀 양육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선 근로소득에 기대지 말고 불로소득을 획득해야 하며 이를 위해 반드시 투기꾼 대열에 합류하라는 이 지독한 메세지가 LH사태를 둘러싸고 수많은 사회진입계층인 청년들의 귀로 내리꽂히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규탄스럽다.
지긋지긋하고 지독한 메세지들 속에 파묻혀 있는 주거권을 다시 외쳐야 할 때다. 주거는 권리라는 이야기를, 권리는 그 자체로 보장되어야 하며, 이에 가해지는 차별은 그 자체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거권이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구조는 격파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더 가열차게 외쳐야 할 때다. 주거권은 소유권과 다르다. 주거권이 곧 투기할 자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 당연한 말이 너무나 많은 언론과 미디어에서 왜곡되고 있는 이유는, 너무 오랜 세월 투기 권하는 사회 구조에 의해 시민들의 주거권이 저당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주거는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다. 주거에 관한 한 공정한 경쟁, 특히 공정한 투기는 성립할 수 없다. 투기꾼들에게 주거권을 저당잡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가열차게 외칠 것이다.
논평 이후,
▶ 3월 29일 월요일 1시, LH사태 관련 청년단체 공동 토론회 예정
[LH사태 논평]
투기 권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2021.03.23.
민달팽이유니온
이럴 줄 알았다는 냉소가 만연하다. LH사태는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토지를 사회적 재화가 아닌 개인의 투기 수단으로만 바라보던 한국 사회의 곪은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오랜 시간, 투기를 방조하고 이를 되려 경제 성장 동력으로 오용했던 한국 사회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굳건히 수호해왔다.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잠재워야 하는 공직자들도 사실상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금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다.
저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근거 있는 냉소는, 모순적이게도 다시금 투기 권하는 사회 풍조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언론을 보고 있노라면, LH투기에서 ‘투기’는 잘못이 없고 ‘LH’만이 문제이며, 저들보다 공정한 방법으로 투기하기 위해 노력해서 주거 안정과 자산 증식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는 진지한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과거로부터의 자산보유량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곧 삶의 격차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는 자산불평등의 또 다른 말이다. 거주목적 외에 투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주택 들이 모여 가계자산의 격차를 돌이킬 수 없을 수준으로 벌리고 있다. 국토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주택보유여부가 자산불평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며, 이 중 다주택자 집단은 자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또 사회진입계층인 2030세대의 자산불평등도는 다른 연령집단보다 높으며, 비수도권보다는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자산불평등도가 높게 나타난다.
자산 격차가 곧 삶의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 안에서, 투기를 권하는 사회 풍조는 기만이다. 이런 사회에서 투기를 장려하는 것은 이미 가진 자들의 자산 증식 수단을 굳건하게 돕고, 투기꾼들이 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방식으로 획득한 기존 권력을 더 견고히 유지 및 확장하도록 조장하며, 부동산 계급 사회의 존속을 담보할 뿐이다.
한국 사회는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증식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삶 사이에 생기는 간극을 더 심화시킴으로써, 투기 하지 않는 시민에게 끊임없이 보다 나은 세력에 소속되어 더 나은 삶을 보장받으라는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이 메시지에 너무 많은 청년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 사회는 임대인의 횡포에 무방비하게 피해 입는 세입자로 사는 삶을 방치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너 또한 세입자 지위에서 벗어나 임대인의 반열에 올라서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불로소득 없이 노동소득만으로 생계를 꾸리며 노동자로 사는 삶을 향해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동산 투기 하는 사람보다 네 노력이 덜 가치 있으니 억울하면 너도 투기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투기는 절대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 그 자체로 부조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청년들에게 누군가 속삭인다. 투기 반열에 뛰어들라고, 그렇지 않으면 평생 무엇의 노예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이것은 차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차별 받지 않는 세력이 되라는 말과 다름없다.
투기 권하는 사회에서 주거권은 권리로 인정받지 못한다. 지금의 한국이 그렇다. 투기로 자산을 증식한 자가 땅과 집을 독점하고 이를 토대로 획득한 권력으로 더 많은 투기를 조장하고 자산불평등을 심화시키기만 하는 사회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고서, 이 사회가 지속가능할 리 없다. 투기꾼들의 불로소득을 떠받치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시민들의 삶이 지속가능할 리 없다. 모두가 투기꾼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할 리 없다.
초고속 성장 시대에 경제 발전을 이유로 복지를 국가가 아닌 개별 가정과 개인들에게 떠맡기고, 주거 안정을 비롯한 삶의 안전망 또한 국가가 책임지고 토대를 마련해두지 않은 결과가 지금 아닌가. 민간 주도로 집값 안정을 이루겠다는 감언이설로 부동산 정책들을 좌지우지했던 세월이 쌓여, 마침내 공직자조차도 자신들이 위치한 곳이 어디인지를 망각하고 자신의 성공을 100% 믿는 투기가담자가 되고 만 것 아닌가. 주거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집을 소유해야만 하며, 노후를 대비 하고 자녀 양육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선 근로소득에 기대지 말고 불로소득을 획득해야 하며 이를 위해 반드시 투기꾼 대열에 합류하라는 이 지독한 메세지가 LH사태를 둘러싸고 수많은 사회진입계층인 청년들의 귀로 내리꽂히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규탄스럽다.
지긋지긋하고 지독한 메세지들 속에 파묻혀 있는 주거권을 다시 외쳐야 할 때다. 주거는 권리라는 이야기를, 권리는 그 자체로 보장되어야 하며, 이에 가해지는 차별은 그 자체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거권이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구조는 격파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더 가열차게 외쳐야 할 때다. 주거권은 소유권과 다르다. 주거권이 곧 투기할 자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 당연한 말이 너무나 많은 언론과 미디어에서 왜곡되고 있는 이유는, 너무 오랜 세월 투기 권하는 사회 구조에 의해 시민들의 주거권이 저당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주거는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다. 주거에 관한 한 공정한 경쟁, 특히 공정한 투기는 성립할 수 없다. 투기꾼들에게 주거권을 저당잡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가열차게 외칠 것이다.
논평 이후,
▶ 3월 29일 월요일 1시, LH사태 관련 청년단체 공동 토론회 예정